열린마당

[밀알 하나] 과연 누가(무엇이) 높고, 누가 낮은가?’

박태웅 신부 (교구 장애인사목위원회 전담)
입력일 2017-12-05 수정일 2017-12-12 발행일 2017-12-10 제 3073호 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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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너를 포함한 이 세상을 보면, 다르거나 비슷해 보이는 것은 있을지 몰라도 같은 것은 없다. 그리고 그것들은 하나하나가 다양한 것들로 꾸며져 있다. 많다/적다, 높다/낮다, 좋다/나쁘다, 있다/없다 등 수없이 많은 것들로. 그렇다면 정말 하느님께서 상하, 좌우, 양적인 사고와 빈부 귀천의 차별적인 생각을 가지고 이 세상을 만드셨을까? 설마 그러셨을 리가!

차분히 멈추어서 눈에 보이는 것들의 속을 좀 더 들여다보면 거기에는 무엇이 있을까? 철학용어로 말하면 존재적이 아니라 존재론적으로 말이다. 즉 피조물 하나하나에게는 둘도 없는 고유한 것이지만, 세상 모든 것을 요란하게 치장하고 꾸미고 있는 것을 다 벗겨내 버리면 거기에는 무엇이 남아 있을까? 액면 그대로의 ‘존재’(있다)라는 것만 남아 있지 않을까. 눈으로 보았을 때는 다름과 차별(차등)의 모습을 보였지만, 그 속의 실재는 모든 것이 그 존재와 가치에 있어서 동등한 ‘같은’ 것만이 존재할 뿐이다.

이런 관점에서 나와 너, 우리를 생각해볼 때 모두는 똑같은 인간 존재, 사람이라는 말이다. 그리고 하느님의 뜻 안에서 신앙의 눈으로 봤을 때 인위적으로 꾸며지지 않은 이것만이 ‘진짜’ 아닐까. 요즘 많이 얘기하는 ‘자존감’이라는 것이 있는 위치도 바로 여기고. 겉이 아닌 그 속에.

그렇다면 이런 사실이 의미하는 바는 무엇일까? 먼저 보이는 것에만 휘둘리거나 착각하거나 속지 말아야 할 것 같다. 인위적으로 이랬다저랬다(변화) 하면서 치장하고 꾸며진 것일 뿐, 본질적인 의미에서 엄격히 나(사람, 인간, 인격)라고 말할 수 없는 것들에 말이다. 예를 들면 집, 자동차, 돈 등의 물질의 소유나 지위, 명예 등이 그런 것들이다.

그리고 ‘진짜’로 보면 모든 것은 가치(값)에 있어서 같은 것이므로(평등, 동등) 우쭐거리거나 잘난 체할 이유가 없는 것이고, 마찬가지로 움츠리거나 낙심하거나 실망할 필요도 없다고 본다. 하느님이 나에게 주신, 없앨 수도 없고 없어지지도 않는 건강한 자존감의 의미다.

물론 보이지 않는 것보다 잘 보이는 것에 길들여져 있고 작은 바람에도 쉽게 흔들리는 존재이기에, 또한 오랜 기간 별다른 반성 없이 몸에 배어있는 고질적인 습관과 같은 것이기에 이런 생각을 갖고 살기가 결코 쉽지는 않다. 기도와 의식과 함께 항구한 노력이 필요하리라 본다.

그리고 이런 근원적인 사고가 정말 중요한 진짜 이유는 이 생각을 바탕으로 모든 관계와 사랑실천의 새로운 지평이 열리게 되기 때문이다. 거짓된 우월감을 갖는다거나 이유 없이 자기비하를 하지 않는 진정성 있고 순수한 관계와 사랑의 실천이 말이다.

모두에게 조심스럽게 묻고 싶다. 지금 나와 여러분 모두가 하고 있는 것이 제대로 된 사랑실천 맞느냐고. 나와 우리 모두가 하느님의 뜻에 맞는 성숙한 관계의 실현과 사랑실천을 하기를 바란다. 정말 하루를 살아도, 한 사람을 만나도 말이다.

박태웅 신부 (교구 장애인사목위원회 전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