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기획/특집

[의정부교구 가톨릭동북아평화연구소 제1회 국제학술심포지엄] 인터뷰 / 전 스위스 제네바 주재 교황청대표부 참사관 아비 가넴 신부

서상덕 sang@catimes.krrn사진 박원희
입력일 2017-12-05 수정일 2017-12-06 발행일 2017-12-10 제 3073호 1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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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와 동북아 평화를 위한 가톨릭의 역할’
“어떤 상황에서도 대화 포기하지 말아야”
서로에 대한 이해 우선돼야 참된 평화 실현할 수 있어
대화와 교류의 장 만들어 화해와 협력의 길 가도록
교회가 리더십 발휘해 주길

1987년 5월 23일. 한국의 주요 언론들은 일제히 다음과 같은 소식을 쏟아냈다.

‘가톨릭, 북한의 문 열다.’

“냉전시절, 중국 등 공산국가에만 문을 열었던 북한이 종교계의 집요한 개방요구에 서방 신부들의 입국을 허용했습니다. 교황 요한 바오로2세가 취임한 지 10여 년만의 성과였습니다. 교황청은 제네바 주재 바티칸대표부의 주세페 베르텔로 대주교와 때때로 한국교회와 바티칸 간의 연락업무를 맡고 있는 한국 국적의 장익 신부 등 2명을 평양에 보낼 예정이라고 이 소식통들은 밝혔습니다.”(MBC 등)

1987년 6월, 북한 평양에서 열리는 ‘남북협력에 관한 비동맹국가 각료회의’에서 이뤄질 가톨릭교회와 북한의 만남을 전하는 소식이다. 한국교회로 보면 남북 분단 이후 실로 40여 년 만에 이뤄지는 공식적 대북 접촉이었다.

한반도 평화에 새로운 물꼬를 텄던 베르텔로 추기경이 사목한 스위스 제네바 주재 교황청대표부에서 참사관으로 활동한 아비 가넴(Antoine Abi Ghanem) 신부가 처음 한국을 찾았다.

의정부교구 가톨릭동북아평화연구소가 12월 1일 경기도 파주 참회와 속죄의 성당에서 ‘한반도와 동북아 평화를 위한 가톨릭의 역할’을 주제로 마련한 제1회 국제학술심포지엄에 참가한 아비 가넴 신부를 만나 한반도 평화에 대한 생각을 들었다.

▲ 한반도는 근대에 들어선 이후에도 평화와는 거리가 멀었다고 할 수 있다. 숱한 외세 침략을 비롯해 일제 강점기와 6·25전쟁, 남북 분단 등으로 이어지는 아픈 역사를 지니고 있다. 이러한 한반도에 와서 느낀 소감을 묻고 싶다.

- 한국에 와서 판문점 공동경비구역(JSA) 등 분단의 아픈 현장을 볼 수 있었다. 남북한 문제는 남한과 북한만의 문제가 아님을 생생하게 느낄 수 있었다. 분단 과정은 물론 한반도를 둘러싸고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는 아픈 현실에는 미국을 비롯해 러시아 중국 일본 등 주변 강대국들 모두 책임이 있다. 그런데 그 책임을 인정하기 보다 상대를 존중하지 않고 서로 책임만을 떠넘기기 때문에 비극이 이어지고 있다.

▲ 분쟁의 화약고라고 불리던 중동 레바논에서 태어났다. 사제로서 보기 드물게 안보 군축 분야에서 활동하고 있다. 평화에 대해 남다른 생각이나 느낌이 있을 것 같다. 한국 신자들에게 들려주면 좋겠다.

- 레바논은 ‘모자이크 나라’로 불린다. 인구의 41%인 그리스도교를 비롯해, 27%가 수니파 이슬람, 27%가 시아파 이슬람이며 이 종교에서 갈라져 나온 18개 종파가 얽히고설켜 있다. 20~30년 전만 하더라도 지옥이 따로 없을 정도로 암울했다. 하지만 레바논 국민들은 서로 다름을 인정하고 대화를 택했다. 그 결과 모든 종파가 분리와 분단을 반대해 지금의 평화를 유지하고 있다. 의원내각제를 채택해 대통령은 그리스도교에서, 총리는 수니파, 국회의장은 시아파에서 맡는 등 각 종파가 권력을 공유하고 있는 것이 평화를 유지하는 비결이다. 모든 평화의 핵심은 대화에서 시작된다.

▲ 주 유엔 교황청대표부와 제네바 국제기구의 군축문제 담당관, 교황청대표부 참사관, 군축 안보 분야 자문역 등 활동해온 이력이 독특하다.

- 교황청은 1967년에 스위스 제네바에 대표부를 설립해 오늘날까지 반세기 넘게 온 인류가 함께 누려야 할 이 땅에 평화를 가져오기 위해 힘을 기울여오고 있다. 1987년 6월, 한반도에 새로운 평화의 물꼬를 트는데 기여한 당시 제네바 주재 교황청대표부 교황대사가 주세페 베르텔로(1997~2000) 대주교였다.

1999년 무렵 교황청 외무부에서 내가 활동하고 있던 레바논 마로나이트 가톨릭교회로 요청이 왔다. 1992년부터 1998년까지 레바논 마로나이트 가톨릭교회 사무총장으로 활동하며 레바논 교회 안팎에서 갈등을 조정해온 경력이 이 길로 이끈 배경이 된 것 같다. 이후 2000년부터 2002년 8월까지 주 유엔 교황청대표부와 제네바와 뉴욕 등에 있는 다른 국제기구에 파견돼 갈등 조정, 군축 분야 등에서 본격적으로 활동하기 시작했다. 2002년 8월부터 지난 2016년 6월까지는 스위스 제네바 주재 교황청대표부 참사관 등 외교사절로 활동하며 주로 안보와 군축 분야에서 활동해왔다. 지난해 6월부터는 제네바에서 안보 군축 분야 자문역으로 일하며 교회의 평화를 위한 길에 힘을 보태오고 있다.

▲ 일상적으로 평화가 위협 받고 있는 한반도 상황에 대해 알고 있으리라 생각한다. 한반도에서 이어지고 있는 불안한 평화는 수많은 문제를 내포하고 있을 뿐 아니라 지속적으로 문제를 낳고 있다. 한반도에 참 평화를 불러오기 위한 조언을 듣고 싶다.

- 우리가 발 디디고 있는 현재는 무수한 역사적인 맥락을 전제로 한다. 한국을 포함한 동아시아 역사에서는 ‘화해’를 찾아보기 힘든 것 같다. 이런 경우일수록 교회가 리더십을 발휘할 필요가 있다. 사회와 국가 공동체의 총의를 모아 화해와 협력의 길로 나아갈 수 있도록 힘을 기울여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미래를 이끌어갈 세대에 대한 교육이 중요하다. 전쟁과 갈등의 기억을 가진 이들보다 이런 미래 세대들이 서로를 재발견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공동의 미래를 만들어갈 수 있도록 만나서 나눌 수 있는 교류의 장이 많이 생겨나야 할 것이다.

▲ 교회는 ‘평화는 정의의 열매’(이사 32,17)라고 가르친다. 이런 가르침으로 본다면 한반도는 정의가 왜곡되고 스러진 상태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이러한 상황이 이어지고 있는 주된 원인은 무엇이라고 보는지. 한반도에서 주님의 정의를 세우기 위해, 평화를 불러오기 위해 가장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

- 역사를 돌아보면, 인류는 전쟁으로 점철된 시기보다 평화로운 시대에 더 많은 성취를 이뤄냈음을 생각할 필요가 있다. 자존심, 오만 등 인간적인 욕심이 진리를 볼 수 있는 눈마저 가린다. 주님께서 주시는 평화를 이 땅에 불러오기 위해서는 서로에 대한 이해가 전제돼야 한다. 먼저 스스로를 돌아보라. 상대방을 얼마나 이해하고 있는가. 이해 수준이 어느 상태에만 머물러 있지는 않은가. 참혹한 전쟁의 기억에서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면 평화를 위한 노력을 포기한 것이나 다름없다. 더 깊은 이해, 더 큰 평화를 위해서는 ‘대화’ 만큼 좋은 길이 없다. 어떤 상황에서든 대화를 포기해서는 안 되는 이유다.

▲ 갈수록 국경 개념이 희석되고 세계화가 심화되고 있는 현실에서 한 나라의 평화 또한 국제적 관계에 크게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평화를 위해 일하는 이들의 연대가 필요한 까닭이다. 특히 한반도를 둘러싼 평화 문제를 풀어나가기 위해 어떠한 형제적 연대와 노력이 필요한가.

- 제2차 세계대전 후 참혹한 전쟁의 기억을 지닌 독일과 폴란드 간의 화해는 불가능한 것처럼 보였다. 독일 교회가 나서 평화의 물꼬를 텄다. 다양한 교류 프로그램을 만들어 두 나라 청년들이 서로 오가며 이해의 길을 넓혀나갔다. 마찬가지로 한반도 평화에 관심을 지닌 다양한 나라의 청년들이 서로 교류하며 평화의 길을 조금씩 넓혀나가다 보면 새로운 지평을 만날 수 있을 것이다.

평화를 위해 중요한 것은 포기하지 않는 것이다. 하느님 아버지께서도 우리 인간이 회개하고 당신께로 다시 돌아오길 표기하지 않으신다는 것을 잊지 말았으면 한다.

■ 아비 가넴 신부는

- 1954년 레바논 Wata El Jawz에서 출생

- 카슬릭(Kaslik)에 있는 교황청립 성령대학교(USEK)에서 철학과 신학 수학

- 1982년 레바논 마로나이트 가톨릭교회에서 사제서품

- USEK에서 신학 석사 학위

- 1983~1987년 프랑스 파리 제4대학(소르본느대학)과 독일 튀빙겐대학에서 철학과 정치철학 수학(소수자 문제 전공)

- 1980~1983년 USEK 홍보실장, 부사무총장 역임

- 1989~1990년 USEK에서 정치철학 강의

- 1993~1997년 USEK에서 인권문제 강의

- 1992~1998년 레바논 마로나이트 가톨릭교회 사무총장

- 2000~2002년 8월 유엔 주재 교황청대표부와 제네바와 뉴욕 등에 있는 다른 국제기구 파견

- 2002년 8월~2016년 6월 스위스 제네바 주재 교황청대표부 참사관, 안보 군축 문제 담당

- 2016년 6월~현재 제네바에서 안보 군축 분야 자문역으로 활동

서상덕 sang@catimes.krrn사진 박원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