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기획/특집

[염철호 신부의 복음생각] 죄악의 장막 찢고 주님에게로

염철호 신부 (부산가톨릭대학교 성서신학 교수)rn부산교구 소속으로 2002년 사제품을 받았
입력일 2017-11-28 수정일 2017-11-28 발행일 2017-12-03 제 3072호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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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림 제1주일
(마르 13,33-37)

오늘 제1독서에서 이사야 예언자는 침묵하시는 하느님께 하늘을 찢고 내려오시라고 간청합니다. 하느님께서는 예로부터 우리의 구원자이신데 지금은 하늘 위에 가만히 앉아 침묵하고 계신 듯 보이기 때문입니다. 이사야는 사람들이 하느님을 올바로 깨닫지 못하게 되고, 그분의 길에서 벗어나게 된 것, 사람들의 마음이 굳어지고, 하느님을 경외하지 못하게 된 것이 모두 하느님의 침묵 때문이라고 여깁니다. 그래서 이사야는 하느님께 “하늘을 찢고 내려오시라”고 청합니다.(이사 63,19) 당신이 참으로 성실하신 분이심을 드러내시라는 간청입니다. 그러면 온 세상이 당신 앞에서 두려워 떨 것입니다. 그리고 모두가 당신께로 돌아설 것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성실한 분이시기에 당신이 창조하신 이들을 고통과 파멸 속에 내버려 두실 리가 없습니다. 그래서 이사야는 인간의 죄로 모두가 고통을 당하게 되었지만, 모든 것이 하느님의 창조물이니 성실하신 당신께서 책임져 주시기를 간청합니다.

사실,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은 창조주 하느님께서 당신의 창조 사업에 대해 온전히 책임지고자 하신 결과였습니다. 하느님께서 하늘을 찢고 내려오시어 모두를 당신과 화해시키신 것입니다. 이는 올 한 해 읽게 될 마르코 복음서에서도 잘 드러납니다. 복음서 시작 부분에 예수님께서 세례를 받으실 때 하늘이 갈라지며 성령께서 비둘기처럼 내려옵니다.(마르 1,10) 그리고 복음서 마지막에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돌아가실 때 성전 휘장이 위에서 아래까지 두 갈래로 찢어집니다.(마르 15,38) 하느님께서 오랜 침묵을 깨고 하늘과 성전 휘장을 찢고 세상에 개입하시어 당신을 드러내시었음을 밝히는 이야기입니다.

이제 그리스도를 통해 모두가 하느님과 화해하게 되었고, 이를 통해 하느님의 성실하심이 드러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아직 모든 것이 완성된 것은 아닙니다. 우리는 여전히 이 땅에 발을 딛고 살고 있고, 인류는 여전히 죄악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당신 제자들을 파견하시어 세상 끝날까지 모두를 당신 안으로 불러 모으라고 명하십니다. 그리고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모두 이러한 예수님의 명을 받들어 세상 곳곳에 복음을 선포하는 이들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실 그날, 곧 하느님의 약속이 온전히 이루어지는 그날을 깨어 기다립니다. 그러면 성실하신 주님께서는 당신께서 약속하신 것처럼 반드시 하늘을 찢고 다시 내려오실 것입니다. 그때 우리 모두는 비로소 그분과 완전한 친교를 맺게 될 것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이렇게 종말을 깨어 기다리는 우리 모두를 예수 그리스도의 날에 흠잡을 데가 없게 해 주실 것입니다. 하지만 지금 우리의 모습은 어떠합니까?

오늘 제2독서로 봉독한 코린토 1서의 말씀처럼 하느님께서 베풀어주신 풍성한 은총에도 불구하고, 그리스도에 관한 증언이 우리 가운데 튼튼히 자리 잡고 또 어떠한 은사도 부족함이 없는데도 불구하고 여전히 흠잡을 데가 많은 우리들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이미 영접했음에도 불구하고 제1독서의 이사야가 이야기하듯이 주님의 길에서 벗어나 살아가곤 하며, 마음이 굳어져 주님을 경외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주님의 길 위에서 늘 구원을 받지만, 다시금 부정한 자가 되고, 의로운 행동을 외면합니다. 그러면서 주님께 다시금 하늘을 찢고 내려오시라고 기도만 합니다. 우리 스스로가 죄악의 장막을 찢고 하느님께로 나아가지 않고, 우리 스스로가 이기심과 자만의 장막을 찢고 이웃에게로 다가가지 않고, 여전히 가만히 앉아 주님과 당신과 우리 사이를 가로막는 장막을 찢어 달라고 청하고만 있습니다.

이번 예수님의 재림을 깨어 기다리겠다고 다짐하며 성탄절을 준비하는 대림 시기를 시작하면서 다시 한 번 하느님과 이웃을 외면하며 가려왔던 우리들의 장막을 스스로 찢겠다고 다짐합시다. 그러면 하느님께서 반드시 하늘을, 아니 우리 장막을 찢고 우리에게 다가오실 것입니다.

염철호 신부 (부산가톨릭대학교 성서신학 교수)rn부산교구 소속으로 2002년 사제품을 받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