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주의 창

[방주의 창] 하느님이 준비하신 137억 년의 시간과 우리의 시간 100년 / 양기석 신부

양기석 신부 (수원교구 송전본당 주임·수원교구 환경위원회 위원장)
입력일 2017-11-28 수정일 2017-11-28 발행일 2017-12-03 제 3072호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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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 5월 4일 다수의 어린이들이 서울 행정법원에 ‘새만금공유수면매립면허 취소 및 새만금간척사업 시행인가 취소 소송’을 내며 미래세대가 향유할 새만금 갯벌을 파괴하는 새만금간척사업의 중단을 요구했습니다. 미래세대의 환경권을 언급한 1992년 「리오선언」에 근거해 ‘자연자원은 현 세대의 전유물이 아니라 미래세대가 오래도록 누려야 할 공동의 재산으로, 미래세대에게 빌려온 것이다’라는 생각에서 「미래세대환경소송단」이 제기한 소송이었습니다.

그러나 고등법원에서는 어린이들은 원고 자격이 없다며 기각했습니다. 사업 추진의 결과에 대한 부담을 온전히 짊어져야 하는 어린이들과 미래세대에 대한 책임의식이 우리 법체계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겁니다.

반면 필리핀의 경우 1990년 43명의 어린이들은 자신들과 미래세대까지 공유해야 될 원시림이 무분별하게 벌목되어지는 것을 막고자 원고 자격으로 낸 벌목금지 소송에서 최종 승소했습니다. 이에 필리핀 정부는 70여 건의 벌목허가를 취소했습니다. 리오선언에 근거한 미래세대의 환경권, 이 부분에 한해서는 우리 사법부의 수준이 필리핀보다 못하다 할 수 있습니다.

우주가 생성된 시기를 대폭발(BIG BANG)이 일어난 대략 137억 년 이전이라고 합니다. 커다란 별 하나가 생명을 마치고 소멸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빅뱅이 오히려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새로운 별을 만들어낸 우주 생성의 신비로 이해하고 있습니다. 「경이로움/인간과 우주와의 경이로운 만남」(주디 카나토 저, 이정규 역)에서는 이러한 의미에서 빅뱅의 첫 순간부터 생명을 향한 충동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합니다. 태초에 우주가 생성되는 속도가 1조의 1조 분의 1퍼센트라도 느리거나 빨랐다면, 중력이 너무 커서 붕괴되었거나, 반대로 중력이 너무 약해 사방으로 흩어져 우주가 생성되지 않았을 것이라고 지적합니다.

이러한 사실이 우주가 탄생하는 순간부터 지금까지 ‘생명을 향한 의도성’이 있었다고 봐도 무방하리라 이야기합니다. 신앙적으로 이해하면, 하느님께서 현재의 우리를 창조하시기까지 최소한 137억 년의 시간이 필요했다는 것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를 만나시는데 준비하신 시간이 137억 년이라는 것입니다. 아브라함 헤셀은 이것을 ‘한없는 경이로움’이라고 표현합니다.

그런데 주님께서 마련하신 이 경이로운 우주에, 구체적으로는 우리가 사는 이 지구생태계에 문제가 생겼습니다. 우주 태동부터 엄청난 시간이 흘러서 이른 지구생태계의 역사 속에서 현생 인류가 태동한 이후 100만 년 동안 지구생태계가 감당해온 자원과 오염물질의 총량보다 지난 100년 동안 우리 인류가 사용한 자원과 배출한 오염물질이 더 많다는 사실은,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 세대가 스스로 감당할 수 없는 일을 저지르고 있다는 것의 방증입니다.

온실가스로 인한 기후변화 문제가 심각한 이 시기에 탄소배출량으로 세계 7위권인 우리나라의 현실, 그리고 후쿠시마 사고 이후 그 어느 때보다도 핵발전소와 핵폐기물에 대한 위험성에 대한 인식이 높아진 시점에 핵발전소 추가 건설을 ‘공론화’라는 허울 좋은 과정을 통해 선택한 우리 한국 사회의 모습은 인간이 얼마나 오만하고 어리석은지를 다시 확인하는 계기였습니다.

회칙 「찬미받으소서」에서 프란치스코 교황께서는 ‘인간이 절대적 지배자를 자처하면 인간 삶의 기초가 붕괴된다’고 경고하십니다. 우리는 이 세상의 주인이 아님을 다시 확인해야 합니다. 우리가 초래한 문제를 우리의 방식으로는 해결할 수 없습니다. 창조주이시며 이 세상의 유일한 주인이신 하느님께 대한 올바른 신앙고백으로 기후변화, 탈핵 등에 대처해야 합니다.

■ 외부 필진의 원고는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양기석 신부 (수원교구 송전본당 주임·수원교구 환경위원회 위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