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라아
오늘은 그리스도 왕 대축일이다. 특히 오늘 화답송은 고 김수환 추기경님이 가장 사랑하셨다는 착한 목자의 시편이다. 히브리어로 ‘양치기’라는 명사와 ‘치다’는 동사를 알아보기에 참 알맞은 날이다.■양치기
라아 동사의 능동분사형이 로에인데, ‘양치는 사람’ 곧 목자를 의미한다. 이미 고대근동에서 로에는 정치적 권위를 의미하는 말이었다. 옛부터 유목민들은 사람을 다스리는 일이 양을 치는 일과 비슷하다고 생각했다. 대표적으로 오늘의 제1독서인 에제키엘서 34장은 로에가 어떤 일을 하는지 잘 보여준다. 백성을 다스리는 로에는 무엇보다 백성을 보살피는 존재로서(11절) 가축 사이에서 자신의 양 떼를 구하는 사람이다.(12절) 그는 양 떼를 먹이고 편안하게 한다.(15절) 잃은 양을 찾아오고 지치고 병든 양을 고쳐준다.(16절) 이런 복음적 방법으로 로에는 양 떼 사이에 정의와 공정을 세운다.(16-17절) 구약성경이 밝히는 ‘목자의 권위’는 유교적 가치와 근본적으로 다르다. 성경은 목자가 양을 위해서 해야 하는 일은 퍽 소상하게 밝힌다. 하지만 양 떼가 목자에게 언제 어디서나 무조건적으로 목숨 바쳐 충성해야 한다는 강요 따위는 없다. 로에에 대한 가르침에서 보조성의 원리가 뚜렷하다. 오히려 양 떼에게 충실하지 못한 로에를 저주하는 가르침이 성경에 자주 나온다. 역시 에제키엘 34장을 보면, 양 떼를 돌보지 못한 로에를 하느님이 꾸짖으시고, 손수 당신의 양 떼를 구하시겠다고 말씀하신다.(8-10절) 예레미야 예언자도 비슷한 가르침을 전한다.(예레 23,2) 가장 참된 목자는 하느님이시다. 요셉은 마지막 유언으로 “제가 사는 동안 지금까지 늘 저의 목자가 되어 주신 하느님”(창세 48,15)이라며 찬미의 노래를 불렀는데, 착한 목자의 사랑을 듬뿍 받은 양의 기쁨을 엿볼 수 있다. 요셉의 마음은 주님을 로에로 받아들이는 자의 마음이다. 그런 이는 이 세상에 섭섭하고 아쉬운 일이 없을 것이다. “주님은 나의 목자, 나는 아쉬울 것 없어라.”(오늘 화답송)주원준 (한님성서연구소 수석연구원)rn독일에서 구약학과 고대 근동 언어를 공부한 평신도 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