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성

[세상살이 신앙살이] (411) 귀신 (안) 잡는 해병대

강석진 신부(한국순교복자성직수도회)rn
입력일 2017-11-21 수정일 2017-11-22 발행일 2017-11-26 제 3071호 1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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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는 영명축일을 맞이한 수도회 형제가 있어서 공동체 회식을 했습니다. 형제들 각자 추억들을 떠올리며 웃고 떠들던 중 군대 이야기도 나왔습니다. 그러자 어느 형제가 말하기를,

“요즘은 해병대 나온 형제들이 귀신을 안 잡는 거 같아요.”

이 말을 하는 순간, 형제들은 일제히 K형제를 쳐다보았습니다. 그러자 K형제는 웃으며,

“저는 해병대에 있으면서 귀신 잡을 시간이 없었어요. 행정병이라 그냥 볼펜만 잡고 살았어요, 하하하.”

그러자 또 다른 형제가 말하기를,

“사실 귀신을 잡으려면, 간은 좀 커야 할 것 같아요. 다른 해병대 출신인 H형제는 간이 좀 작아서!”

이 말을 듣자 형제들이 까르르 웃었습니다. 나는 영문을 몰라 무슨 일인지를 물었습니다. 그러자 그 형제와 양성 기간을 같이 보낸 어느 형제가 말해 주었습니다.

“예전에 신학원 살 때에 있었던 일인데요. 신학원 성당은 계단 몇 개를 올라간 후 아래에 빈 공간이 있는 발판을 지나서 문을 열고 들어가잖아요. 어느 날 저녁 으스름한 무렵에 형제들 두 명이 그 발판 밑에 숨어서, 기도하려고 성당에 들어가는 형제의 발목을 손으로 잡는 장난을 친 적이 있어요. 맨 처음 전례 담당 형제가 성당에 들어갈 때 발판 밑에 숨어있던 형제들은 양쪽에서 그 형제의 발을 잡았대요. 그러자 전례 담당 형제는 잠깐 동안 깜짝 놀라다가 형제들이 장난친 것을 알고 웃으며 성당에 들어갔어요. 그다음 형제들도 그랬고요. 어떤 형제는 갑자기 발목이 잡혔는데도 말똥말똥 발판 밑을 내려다보고는 그냥 성당으로 들어가더래요. 발판 밑에 숨은 형제들은 다른 형제들의 별 반응이 없자 장난을 그만두고 나오려는데, H형제가 수도복 자락을 나풀거리며 성당으로 오고 있더래요. 그들은 H형제를 보고는 ‘귀신 잡는 해병대 출신 형제가 저기 오는데, 전혀 안 놀라겠지’라고 말했답니다. 그래도 ‘밑져야 본전이지’ 하면서 기다렸습니다. 그리곤 계단을 지나 ‘퉁-퉁’ 하며 발판을 지나는 소리가 들리자 그들은 양쪽에서 H형제의 발목을 잡았습니다. 그 순간 해병대 출신인 H형제는 ‘아-아-악’ 비명을 지르더니 뒤돌아 계단 몇 개를 훌쩍 뛰어 내려가 다시 본관 건물로 뛰어갔대요. 두 형제의 증언에 의하면, 살다 살다 그런 비명 소리는 처음 들었다는 거예요. 형제들의 장난이 원장 신부님의 귀에도 들어가, 그날 밤 두 형제는 호된 반성문을 썼다고 해요.”

이야기를 듣곤 모두들 박장대소했습니다. 나 역시 함께 웃다가 문득 비명을 지른 해병대 출신 H형제에게 그날 이후 어떻게 했는지 궁금해서 물었습니다.

“그래, 정말 놀라기는 했겠다. 그래서 그날 저녁, 어떻게 됐어?”

H형제는 머리를 긁적이며,

“그냥 피곤해서 일찍 잤어요.”

그러자 그날 현장 목격 증인인 다른 형제가 말하기를,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지 못해 밤새 수도복 입고, 한 손에는 묵주 쥐고, 다른 손에는 십자가를 쥐고 잤대요. 식은땀 흘리면서!”

그날 밤, 나는 혼자서 소망을 빌었습니다.

‘주님, 우리 형제들이 진짜 귀신은 못 잡아도 좋으니, 돈 귀신, 명예 귀신, 권력 귀신, 게으름 귀신에게만은 결코 홀리지 않도록 이끌어 주소서.’

강석진 신부(한국순교복자성직수도회)r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