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기획/특집

[염철호 신부의 복음생각] 준비된 이만이 하늘나라를 얻으리니

염철호 신부 (부산가톨릭대학교 성서신학 교수)rn부산교구 소속으로 2002년 사제품을 받았
입력일 2017-11-14 수정일 2017-11-15 발행일 2017-11-19 제 3070호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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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제33주일 (마태 25,14-30)

지난 주 우리는 열 처녀의 비유를 들었습니다. 이 비유를 통하여 예수님께서는 당신이 다시 오시기 전에 등에 채울 기름을 잘 준비해 두어야 한다고 가르쳐 주셨습니다. 이 비유에 이어 예수님께서는 탈렌트 비유를 말씀해 주시는데, 오늘 복음에서 듣게 되는 탈렌트 비유를 통해 다시 한 번 자신에게 맡겨진 탈렌트를 잘 활용하여 주님의 재림을 잘 준비해야 한다고 가르치십니다. 등만 가지고 있으면서 등에 채울 기름을 준비하지 않는 어리석은 다섯 처녀처럼 자신에게 맡겨진 탈렌트를 땅에 묻어 두어서는 안 되고, 등과 기름을 잘 준비한 슬기로운 다섯 처녀처럼 자신에게 맡겨진 탈렌트를 이용해 더 많은 탈렌트를 모아야 한다는 가르침입니다.

사실, 탈렌트란 금이나 은 등을 측정하는 무게 단위로 대략 28~36킬로그램에 해당하는 것으로 금화 한 탈렌트는 복음서가 저술되던 시기의 화폐 단위로 6,000데나리온, 곧 숙련된 노동자의 6,000일치 일당에 해당되는 금액입니다. 숙련공의 하루 일당을 10만원으로 잡으면, 오늘날 기준으로 6억 원 정도에 해당하는 돈입니다. 이 정도 되니 한 탈렌트도 적은 금액은 아닙니다. 그래서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어떤 사람이 여행을 떠나면서 종들을 불러 “재산”을 맡겼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물론, 오늘날 영어로 재능을 의미하는 ‘탤런트’가 이 말에서 나온 것을 두고 탈렌트를 각자가 받은 재능으로 이해할 수도 있겠습니다. 어찌되었든 오늘 복음에서 임금이 맡긴 재산이란 하느님께서 우리 각자에게 부여하신 재물, 은총, 은혜들을 모두 포함하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아니, 더 나아가 우리 모두가 하느님께로부터 탕감 받은 빚들, 곧 우리가 용서 받은 죄들도 모두 포함된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마태 18,23-35).

그런데 오늘 복음에서 임금은 각자의 능력에 따라 어떤 이에게는 다섯 탈렌트를, 어떤 이에게는 두 탈렌트를, 어떤 사람에게는 한 탈렌트를 맡겼다고 이야기합니다. 이 이야기를 들으면서 종종 하느님은 사람을 차별하는 분이신가 라는 생각을 하곤 합니다. 하지만 한 탈렌트마저도 그 금액이 어마어마하다는 사실과 다섯 탈렌트를 받은 사람은 다섯 탈렌트를 더 벌어야 하지만, 한 탈렌트를 받은 사람은 한 탈렌트만 더 벌면 하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 순간 무조건 하느님에게서 많은 탈렌트를 받는다고 해서 하느님께 더 사랑받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새삼 깨닫게 됩니다.

중요한 사실은 각자가 그 능력에 따라 하느님께 재물을 나누어 받는다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이 탈렌트가 용서 받은 양이라고 말한다면 많이 용서받은 만큼 많이 용서해야 한다는 점에서 굳이 많은 탈렌트가 좋은 것만도 아닙니다.

어찌 되었건 각자의 능력에 따라 탈렌트를 나누어 받은 종들은 임금이 여행에서 돌아온 뒤 셈을 하게 됩니다. 그런데 다섯 탈렌트를 받은 이는 그 돈을 활용하여 열심히 다섯 탈렌트를 더 벌었습니다. 지난 주 복음의 기준에 따르면 자신에게 맡겨진 등에 채울 기름을 열심히 준비하였던 것입니다. 주인은 그 종에게 매우 성실했다고 칭찬합니다. 그러면서 주인은 ‘작은 일’에 성실한 그에게 더 많은 일을 맡기겠다고 말합니다. 아마도 하늘 나라에서 그들에게 맡겨질 자리를 의미하는 듯합니다. 이제 그는 주인과 함께 하늘 나라에서 큰 기쁨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두 탈렌트를 받은 이도 다섯 탈렌트를 받은 종처럼 열심히 두 탈렌트를 더 벌었습니다. 그는 비록 두 탈렌트밖에 벌지 못했지만, 주인은 다섯 탈렌트를 번 종과 같은 칭찬을 주십니다. 그도 다섯 탈렌트를 번 이와 마찬가지로 큰 일을 맡게 될 것이며, 주인과 함께 하늘 나라에서 큰 기쁨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하지만 한 탈렌트를 받은 종은 달랐습니다. 주인이 모진 분이라고 오해하며 걱정에 빠진 나머지 한 탈렌트를 땅에만 숨겨두고 있었습니다. 한 탈렌트도 부풀릴 마음이라도 있었더라면 다른 이의 도움을 받아서라도 부풀렸어야 했는데, 아무 준비도 하지 않은 채 두려움에 사로 잡혀 있다가 결국 가진 것마저 빼앗겨 버리고, 바깥 어둠 속에 던져져서 그곳에서 울며 이를 갈 운명에 떨어지게 됩니다. 그리고 그에게 맡겨졌던 그 탈렌트는 열 탈렌트를 가진 이에게 주어질 것입니다. 이렇게 오늘 복음은 다시 한 번 하늘나라는 가만히 앉아서 기다린다고 주어지지 않고, 자신이 받은 만큼 내어놓으며 끊임없이 합당한 준비를 할 때 얻을 수 있는 것이라고 가르쳐 줍니다.

염철호 신부 (부산가톨릭대학교 성서신학 교수)rn부산교구 소속으로 2002년 사제품을 받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