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마당

[민족·화해·일치] 형제 / 손서정

손서정 (베아트릭스) 평화활동가
입력일 2017-11-14 수정일 2017-11-14 발행일 2017-11-19 제 3070호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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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라는 단어가 내 삶에 깊숙이 비집고 들어온 것은, 몇 년 전 논문자료를 찾다가 아일랜드의 한 대학교 홈페이지에서 ‘국제평화학’이라는 분야를 접하게 되면서부터다. 그때부터 평화라는 단어가 가진 그 무엇인가에 쏘옥 빠져들기 시작했다. 일단 지원을 해보고 합격이 되면 아버지의 뜻이려니 따라야지 하며 시도한 길이 현재까지 내 삶의 방향을 지탱하고 있다.

‘평화학’은 우리나라에는 아직 학위과정이 없지만, ‘요한 갈퉁’이라는 노르웨이 학자가 1960년대에 폭력의 개념을 재정리하고 분류하면서 본격적인 학문으로 자리를 잡았다. 종교, 인종, 국제 정치, 인권, 경제, 문화 등의 여러 분야를 아우르는 실용학문으로 유럽과 북미에서는 이미 활발한 연구가 진행되고 있다.

어린 아들 둘을 데리고 별다른 사전 준비도 없이 해외로 떠난 길은 즐거운 모험이었지만, 꾸려가는 삶이 결코 만만치만은 않았다. 영어 한마디 못하는 아이들을 학교에 데려다 주고, 다시 나의 학교로 가서 수업을 듣고 아이들 하교시간에 맞춰 데리러 가면 하루에 걷는 시간만 총 3시간이었다. 집에 와서 저녁을 준비하고 잠잘 준비를 끝내면 내가 온전히 가질 수 있는 시간은 오직 새벽뿐이었다.

하지만 그 무엇보다 힘든 건 10대에 막 접어든 큰아이와 형을 무조건 따르기만 하던 5살 어린 작은아이가 자기의견을 피력하면서 서로 다투기 시작한 것이다. 공을 차고 놀다가도 티격태격하며 몸싸움으로 번지기 일쑤였다. 강의 시간에 리비아의 난민과 스리랑카의 인종 학살을 토론하고 평화의 방향을 부르짖고 결의를 다지고 돌아오지만, 막상 집안의 작은 평화도 못 이루는 현실을 맞닥뜨리면 내가 무슨 한반도 평화와 세계평화를 논할 자격이 있나 싶었다.

바쁜 일정에 치여 일단 근본적인 물음으로 접근하기보다 뒤엉켜 있는 두 아이를 일단 떼어내 분리시키고, 침묵으로 엄마가 화가 난 것을 보여주면 겉으로 다시 평온해지곤 했다. 그런데 그런 상황이 자주 반복이 됐다. 찬찬히 들여다보니 겉으로 드러난 시시콜콜한 변명들은 진짜 문제를 깊숙이 감춘 채 드러난 표면일 뿐이었다.

작년 하반기부터 온 나라를 떠들썩하게 만든 비리를 둘러싼 갈등, 남과 북의 반목과 질시 또한 그런 것이 아닐까? 내재된 상처와 구조적인 폭력이 쌓여 방치될 경우, 갈등이 깊어지고 직접적인 폭력이 발생하게 된다. 문제를 진지한 대화로 이끌어내지 못했기 때문에 점점 더 골이 깊어지는 형제 국가, 상대가 원하는 것을 직시하고 원만한 해결을 위해 다가서려는 노력을 하지 못하면 그 관계는 더욱 악화될 수밖에 없다.

상대의 진심을 깊이 살피고 공감한 후에야 정의를 이루려는 서로의 노력이 부가되고, 비로소 평화가 찾아온다는 것을 우리는 이미 삶에서 자주 경험하고 있다. 내 삶에서의 작은 실천을 지속적으로 조금씩 확대해 나간다면, 한반도의 두 형제 국가의 화해도 아주 멀기만 한 미래는 아닐 것이다.

손서정 (베아트릭스) 평화활동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