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에서

[현장에서]가난한 이, ‘네’가 아닌 ‘우리’ / 이승훈 기자

입력일 2017-11-14 수정일 2017-11-14 발행일 2017-11-19 제 3070호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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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교구 선교사제가 파견된 칠레 산티아고의 선교지에서 미사를 취재하던 중 우리나라에서는 보지 못한 풍경을 만났다. 봉헌이 시작되자 헌금을 내기 전에 먼저 어린아이들과 신자들이 제대 앞에 나와 바구니에 봉지를 하나씩 넣는 모습이다. 봉지 안에는 식재료와 빵, 기름 등의 생필품이 들어 있었다. 바로 칠레신자들이 ‘솔리다리다드(solidaridad)’라고 부르는 가난한 이들을 위한 자선물품이다.

신자들의 솔리다리다드를 보면서 한 가지 의문이 들었다. 이 지역은 산티아고 시내에서도 경제적으로 어려운 지역이었다. 아마 대부분의 신자들이 하루 자신들의 끼니를 챙기기도 벅찰 터였다. 그런데 매주 헌금에 자선물품까지 봉헌하다니….

하지만 솔리다리다드에 담긴 뜻을 듣고 의문을 가진 스스로를 반성했다. 솔리다리다드는 사실 자선이나 봉헌과 같은 뜻으로 사용하지 않는다. ‘연대(連帶)’라는 의미가 강하다. 가난한 이들은 나눠주고 베풀어야 하는 대상이 아니라, 우리와 연대하는, 즉 하나로 연결된 공동체라는 것이다. 가난하기에 나눌 수 없다는 생각은 ‘가난한 사람은 받는 사람’이라는 이분법적인 편견이었다.

주님은 “너희가 내 형제들인 이 가장 작은 이들 가운데 한 사람에게 해 준 것이 바로 나에게 해 준 것”이라고 우리를 가르친다. 신자들에게 가난한 이는 ‘네’가 아니라 ‘우리’다. 우리 형제이자 우리 주님이다.

오늘은 세계교회가 처음으로 ‘세계 가난한 이의 날’을 지낸다. 오늘만큼은 ‘내 코가 석 자’라고 말하기보다 ‘콩 한 쪽도 나눈다’는 마음으로 우리 형제들을 위해 작은 행동이라도 실천에 옮겨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