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태/환경

[생태칼럼] (20) 근대의 포화와 문명의 꿈

강금실(에스델)rn포럼 지구와사람 대표rn
입력일 2017-11-07 수정일 2017-11-07 발행일 2017-11-12 제 3069호 20면
스크랩아이콘
인쇄아이콘
 
            
근대는 19세기 중반 공장의 대량생산이 본격화되던 시기에 시작되었다고 본다. 그 무렵부터 현재까지 근대의 여러 물질적 성장을 나타내는 그래프들을 검색해 보면, 국내총생산량 등이 19세기 중반부터 증대하기 시작했는데, 특히 20세기 중반에 이르러 자동차 대량생산과 석유화학제품 생산이 본격화되던 시기부터 급격히 치솟는 추세를 보인다.

인구도 마찬가진데, 1800년에 10억이었다가 1960년에 30억이 되었고, 2011년에는 50년 만에 두 배를 뛰어넘은 70억을 돌파했다. 이 추세로 가면 2070년대에 100억에 이르러 지구가 감당할 여력이 없어진다는 분석이 있다.

근대의 물질적 성장과 인구의 수치가 치솟는 가운데, 이산화탄소 배출량과 기온, 해수면의 높이(19cm 상승)도 정비례해서 똑같은 추세로 급격히 치솟았다.

지금은 현재의 추세로 계속 성장해서 21세기 내에 기온이 섭씨 6도를 돌파하는 재앙이 오느냐 아니냐의 갈림길에 서 있다. 이러한 정비례한 수치로 나타나는 추세를 들여다보면 정말로 “인간의 영광이 지구의 황폐함이 되었다”(토마스 베리)는 말을 실감하게 된다. 대체로 인간의 문명이 주어진 환경과 여러 조건에 상응해서 적응하며 만들어온 것인데 반해서 근대는 주어진 환경을 돌파해서 변형하고 인간의 이익으로 동원하는 새로운 능력을 보여준 문명이다. 그 능력을 뒷받침하는 공고한 기반은 과학기술과 자본이다.

그렇기 때문에 당장 들이닥친 생태위기의 문제도 인간이 지니게 된 막강한 능력을 발휘해서 해결하려들 뿐, 근본적으로 이 문명이 무엇이 잘못되었는가에 대한 질문은 거의 없다.

“지구의 퇴보가 인간 진보의 조건”(토마스 베리)이었다는 엄연한 사실은 해선 안 될 일을 했다는 것밖에 안 된다. 수십 억년에 걸쳐 지금 인간이 살 수 있는 여건을 형성한 이 지구를 단 100년도 안 되는 시간동안 형편없이 망가뜨리고 지구에 생명이 살 수 있는 시스템도 깨뜨려버렸다. 그렇지만 근대의 이 어두운 이면을 성찰하지 않는 한 근대의 왜곡되고 과도한 인간중심적 세계관이 바뀔 것 같지는 않다. 지구는 물론 이제는 우주도 우리가 정복할 수 있는 대상으로 여겨지고 있기 때문에 주재자인 인간의 지위를 계속 지속하려들 것 같다.

근대철학을 집대성한 칸트는 인간학에서 네 가지 질문을 던졌다고 한다. 우리는 무엇을 알 수 있는가,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우리는 무엇을 희망할 수 있는가, 인간은 무엇인가. 근대문명이 포화상태에 이르러 인간다움에 대한 성찰과 함께 문명적 전환을 이루어야 할 이 시점에서 이 네 가지 질문을 던져보는 것은 여전히 유효할 것 같다. 우리의 삶이 지구적 삶이 되었기에 절박하게 깨어있으려는 지성적 노력이 있어야 우리는 삶의 정체를 알 수 있을 것이다.

특히 우리는 무엇을 희망할 수 있는가. 근대는 땅에서 펑펑 쏟아져 나오는 석유를 이용해서 물질문명의 엄청난 성과를 이루었다. 이 문명이 지구의 파괴를 가져왔고 인류생존의 위기를 초래했다면 지구를 이해하려 드는 겸손함에서 출발해야 할 것이다. 지금은 인간의 꿈이 아니라 “지구의 꿈”에서 새로운 문명의 희망을 찾아봐야 할 것이다.

강금실(에스델)rn포럼 지구와사람 대표r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