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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화해·일치] 불과 분열의 평화 / 손서정

손서정 (베아트릭스)rn평화활동가
입력일 2017-11-07 수정일 2017-11-07 발행일 2017-11-12 제 3069호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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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모두 삶 안에서 평화를 바라지만, 매 일상에서 평화를 살아내기란 여간 힘든 게 아니다. ‘평화’라는 단어를 표준국어대사전에서 찾아보면 ‘평온하고 화목함’, ‘전쟁, 분쟁 또는 일체의 갈등이 없이 평온함. 또는 그런 상태’라고 정의한다. 사전적 정의와 같이 평화라는 단어를 생각하면 종종 드넓고 고요한 초록빛 초원의 이미지가 떠오르거나, 아무런 걱정거리가 없는 평온한 상태라고 느껴진다.

그렇다면 평화를 선포하신 예수님은 왜 우리에게 “나는 세상에 불을 지르러 왔다. 내가 세상에 평화를 주러 왔다고 생각하느냐? 아니다. 오히려 분열을 일으키러 왔다”(루카 12,49~51)고 말씀하셨을까? 그렇지 않아도 세상은 분열로 가득한데 말이다. 지금 우리나라는 남과 북의 분단으로도 모자라 남남갈등까지 더해져서 모든 사안에 대해 서로 심각하게 분열돼 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불은 인간의 분노, 전쟁과 화염의 불꽃이 아닌 한분이신 하느님을 향한 뜨거운 열정과 타오르는 성령의 불길을 의미하는 것 같다. 그러므로 분열은 세속적인 인간과 인간 사이의 분열이 아닌 모든 인간 속에 내재된 세속적인 ‘인성’과 하느님의 모상으로 창조된 ‘신성’ 사이에서 타협하기보다 분열을 통해 단호한 결단을 하도록 촉구하는 것이 아닐까. 나 자신, 이웃, 사회와 국가 안에서 꾸며낸 거짓된 안정과 거짓 평화를 깨뜨리고 주님을 통한 참 평화를 이루기를 말씀하신다.

평화에 대한 열정으로 활동가로 일하면서도 분열은 항상 겪을 수밖에 없는 과정이다. 북한수해지원, 북한 어린이들을 돕는 인도지원사업이나 일반인들의 평화감수성을 향상시키기 위한 DMZ평화걷기, 한라에서 백두까지 등반하는 평화순례, 교계 내외의 국제회의 등과 같이 수많은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실무적으로 활동하면서 겪는 과정이 항상 평화롭지만은 않다.

평화를 주제로 하는 여러 행사의 대의에는 대다수 사람들이 동의하지만, 목표를 향한 과정 내에서는 언제나 분열을 목격한다. 아주 작게는 현수막의 글자체를 선택하는 것에서부터 함께 일하는 사람들의 무의식적인 폭력적 언어 사용이나 스스로 자신이 얼마나 대단한지를 부각하려는 기득권 싸움까지 그 논쟁거리는 천차만별로 다양하다. 그러나 분열과 다툼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활동이 성공적으로 마무리될 때에는 항상 그만한 이유가 있다.

내가 보기에 터무니없이 유치하고 불합리 하더라도, 상대에게는 진실로 느껴지는 그 상황을 인정하고 배려할 때만이 그 벌어진 틈이 활짝 열리고, 그 틈을 주님의 진정한 사랑으로 메워 화합할 수 있을 때 비로소 주님의 일로 결실을 맺을 수 있다. 개인 또는 한 공동체가 겪어온 경험이 만들어낸 고유한 정체성과 사고를 인정하는 동시에, 나 자신과 우리 또한 언제든 오류를 범할 수 있는 미약한 존재임을 받아들이는 수용성, 그것이 바로 꼴찌와 가장 작은 이까지 모두 받아들여 첫째가 되게 이끄시는 주님의 평화이고 그분의 사랑이다.

손서정 (베아트릭스)rn평화활동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