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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구·소임 다른 세 사제, ‘오뚜기본당’에서 만난 까닭은?

박지순 기자
입력일 2017-10-31 수정일 2017-10-31 발행일 2017-11-05 제 3068호 2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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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5년 이기수 신부 임관하며 인연 시작
오뚜기본당서 당시 군종병 김성은 신부 만나
김 신부는 임관 후 군종병 김대건 신부와 인연
김대건 신부 오뚜기본당 부임하며 ‘만남 성사’

‘3대 군종신부들’이 과거와 현재, 미래를 함께 걸었다.

이기수 신부(가톨릭신문사 사장)는 10월 25일 김성은 신부(서울 주교좌명동본당 부주임)와 함께 군종교구 경기도 포천 육군 제8기계화보병사단 오뚜기본당(주임 김대건 신부)을 찾았다. 이 신부와 김성은 신부, 김대건 신부는 군종신부와 군종병의 인연으로 맺어져 군사목의 발자취를 3대째 이어가고 있는 보기 드문 역사의 주인공들이다.

오뚜기본당은 이 신부가 군종장교 임관 뒤 첫 주임으로 1995년 부임한 곳이다. 같은 해 김성은 신부가 신학생 신분으로 8사단 신병교육대에 입대, 1996년 오뚜기본당 군종병 소임을 맡으면서 이 신부와 김성은 신부의 군종신부-군종병 인연이 시작됐다.

11년의 세월이 흘러 김성은 신부가 2006년 공군 군종장교로 임관했고 첫 부임지인 광주 제1전투비행단 성요한본당에서 사목할 때 김대건 신부가 군종병으로서 김성은 신부를 돕게 되면서 김성은 신부와 김대건 신부의 군종신부-군종병 인연이 다시 맺어졌다. 김대건 신부가 또 다시 2016년 군종장교로 임관하면서 ‘3대 군종신부’라는 역사가 이뤄졌다.

김대건 신부에게 오뚜기본당이 군종신부 첫 부임지가 됨으로써 오뚜기본당은 3대 군종신부를 하나로 엮는 매개체가 됐다.

이 신부는 “군대는 모든 청년 신앙인들이 거쳐갈 뿐 아니라 전역 후에는 군대에서의 신앙 경험을 바탕으로 자기가 속한 교구에서 신앙생활을 이어가기 때문에 군사목은 한국교회 전체의 청년사목이라는 관점에서 모든 교구가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3대 군종신부들의 출신교구는 대구·서울·광주대교구로 모두 다르지만 군복음화라는 사명 하나로 시간을 초월해 지금도 일치돼 있다는 사실을 이 신부 말을 통해 실감할 수 있었다.

김성은 신부도 “군종신부들이 전역하고 나면 군대에서의 인연이 계속 이어지는 경우가 많지 않다”며 “군종신부로 모신 이 신부님을 보면서 성소를 키웠다”고 말했다.

김대건 신부 역시 “김성은 신부님을 군종병으로 보필하면서 성소에 대한 확신을 얻어 결국 군종신부가 됐는데 오랜 시간이 흘러 오뚜기본당을 찾아주신 두 분 신부님의 격려가 군사목에 큰 힘이 된다”고 감사한 마음을 드러냈다.

김대건 신부는 이 신부와 김성은 신부가 ‘4대 군종신부’ 역사를 만들어 보자고 제안하자 “현재 오뚜기본당 군종병이 신학생이 아니어서 후임 군종병으로 신학생이 들어오면 4대 군종신부 역사를 만들겠다”고 화답했다.

3대 군종신부들은 오뚜기본당 제대 앞에서 본당 발전을 기원하며 한 목소리로 주모경을 바친 후 올해 12월 완공 예정인 새 오뚜기성당을 둘러보고 8사단 신교대 횃불성당(공소)으로 이동했다. 20년 전인 1997년 6월 19일 봉헌한 횃불성당에는 이 신부의 땀이 배어 있다. 이 신부는 당시 신교대에 성당이 없어 병사들 생활관에서 미사를 드리다 횃불성당을 지었던 상황을 회고하고 “돌이켜보니 군종신부로 있을 때 군인 신자들에게 더 잘해 주지 못한 것이 아쉽다”고 밝혔다.

이 신부는 김대건 신부에게 격려금과 위문품을 전달하고 성당에 나오고 싶어도 근무일정 등이 겹쳐 못 나오는 병사들이 생활관에서 가톨릭신문을 직접 받아볼 수 있도록 협조를 요청했다.

※군생활관에서 신문을 구독하고자 하는 분은 가톨릭신문사 관리팀 080-255-5500으로 연락주시기 바랍니다.

박지순 기자 beatles@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