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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화해·일치] 유언보다 더 귀한 말 / 손서정

손서정(베아트릭스) 평화활동가
입력일 2017-10-31 수정일 2017-10-31 발행일 2017-11-05 제 3068호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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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이 죽었다가 다시 살아난다면, 그리고 가장 사랑했던 사람 앞에 다시 설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면 사랑하는 이에게 무슨 말을 할까? 나라면 정말 사랑했다고, 축복한다고 영원히 사랑한다고 말하고 싶을 것 같다.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그것은 유언보다도 귀하고 가장 하고 싶었던 소중한 말일 것이다.

그렇다면, 예수님이 다시 살아나셔서 사랑하는 제자들에게 주신 첫 마디는 그 무엇보다도 귀중한 의미를 전하는 것이리라. 부활 후 두려움에 떨고 있는 제자들에게 나타나셔서 한 첫 말씀은 바로 “평화가 너희와 함께”(요한20,19)다. 평화를 이루며 사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말씀하신 것이다.

평화, 내 안의 평화와 이웃의 평화를 바라고 북한과 그 안에 사는 내 형제자매와 아이들이 보이기 시작하면서 자연스레 분단된 한반도의 현실을 들여다보게 됐다. 어릴 때 주입됐던 반공의식과 노래를 부르며 당연시 여겼던 ‘우리의 소원은 통일’의 관점에서 벗어나, 진지하게 한반도 평화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했다.

한 민족이 같은 언어를 사용하며 살던 한반도는 35년간의 일제강점기에서 벗어나 진정한 해방의 자유를 맛보기도 전에 두 나라로 분단됐다. 당사자인 우리 민족의 충분한 동의와 논의 없이 진행된 분단은 예상했듯이 민족상잔의 전쟁을 일으켜 100만 명이 훨씬 넘는 인명을 희생시켰다. 그리고 1953년, 6·25전쟁의 양방은 합의에 따라 일시적으로 전투를 중단하는 정전협정을 체결했고 그 상태는 60년이 넘게 지속돼 현재에 이르고 있다.

전쟁을 겪은 세대는 언제든 전쟁이 다시 일어날 수도 있다는 내면의 불안감을 지닌 반면, 전쟁의 경험 없이 풍요로움 속에 자라난 세대에게 전쟁이라는 단어는 책이나 영화, 게임에 나오는 비현실적이고 심지어는 오락적인 요소일 뿐이다. 그러나 요즘 미국과 북한 사이에 오가는 언어폭력은 실제적인 무력 충돌의 가능성을 높이며 위협과 공포를 최고조에 이르게 한다.

북한의 핵개발에 맞서 세계 최대의 핵보유국인 미국의 대통령은 유엔총회에서 북한 파괴를 언급하고, 국내 일부의 목소리는 우리 스스로 핵무장을 해야 한다고까지 말한다. 정말 무기 개발과 그에 맞선 폭력으로 평화를 지키겠다는 원리가 실현 가능한 것일까. 전문적인 이론이나 온갖 괴변을 동원해 폭력을 합리화하기 이전에 예수를 따르기로 결심한 그리스도인에게 그 답은 오직 하나일 것이다.

평화를 전하고 몸소 실천하신 온전한 스승 예수의 삶을 따르는 일은 제자가 되고자 하는 모든 이의 사명이다. 하느님께서는 “칼을 쳐서 보습을 만들고, 창을 쳐서 낫을 만들리라”(이사야 2, 4)고 말씀하시며 주님의 빛 속을 걸어가도록 우리를 당신의 자녀로 부르셨다. 주님의 자녀로 인정받은 우리는 그분이 주신 평화와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처럼 나도 너희를 보낸다”고 파견하신 말씀을 삶의 매 순간마다 꼭 붙들고 절대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손서정(베아트릭스) 평화활동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