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성

[민범식 신부의 쉽게 풀어쓰는 기도 이야기] 욕구와 의식 성찰

민범식 신부 (가톨릭대학교 신학대학 영성신학 교수)rn서울대교구 소속으로 2003년 사제서
입력일 2017-10-24 수정일 2017-10-24 발행일 2017-10-29 제 3067호 1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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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식 성찰 통해 욕구 찾을 수 있어
성령의 이끄심으로 이뤄지는 기도
감사로 시작, 주님과 대화로 마무리

찬미 예수님.

욕구에 대해서 여러 주에 걸쳐서 말씀드리고 있습니다. 기도 이야기를 한다면서 무슨 욕구나 심리에 대해서 이렇게 많은 이야기를 하는가 생각하는 분이 계실지 모르겠습니다. 네, 맞습니다. 이 자리를 빌려 여러분과 함께 나누고 싶은 것은 우리 기도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그리스도교 영성 생활이 무엇인지를 더 쉽게 이해하고 살아갈 수 있는 도움을 찾고자 하는 것이지요.

그런데 이처럼 기도 이야기를 하는 자리에서 우리의 심리적인 차원을 이야기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심리 차원에서 벌어지는 일들이 우리 영성 생활에 미치는 영향이 그만큼 크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이르고자 하는 곳은 결국에는 영의 차원에서의 삶입니다. 하지만, 심리적인 부분 곧 정신/마음 차원을 거치지 않고서는 영의 차원으로 온전히 나아갈 수 없다는 것이 우리 대부분의 현실입니다. 정말로 드물게 일어나는, 하느님께서 직접 개입하시는 기적 체험이 아니라면 말이죠. 그리고 우리의 심리적인 삶에서 가장 크게 영향을 미치는 요소 중의 하나가 바로 욕구인 것입니다.

이 욕구라는 것이 우리 안에서 잘 포장되어 있기 때문에, 나의 생각과 말과 행동 안에 숨어 있는 욕구가 무엇인지를 찾는 것이 필요하다는 말씀을 지난주에 드렸습니다. 그렇다면 이런 욕구를 어떻게 찾을 수 있을까요? 이에 대한 좋은 방법을 우리는 교회의 오랜 전통인 의식 성찰 안에서 발견하게 됩니다.

의식 성찰이라는 말을 들어보셨나요? 혹 들어보지 못하셨다면, 양심 성찰이라는 말은 들어보셨을 겁니다. 우리말로는 의식 또는 양심으로 표현되지만 실은 ‘conscientia’라는 라틴어 단어를 다르게 번역하는 말입니다. 그런데 이 단어를 양심으로 알아듣게 되면 이러한 성찰 과정을, 흔히 생각하듯, 양심에 거리끼는 무언가가 있는지 돌아보고 지은 죄에 대해 뉘우치고 반성하는 행위로 이해하게 됩니다. 물론 이것이 꼭 틀린 말은 아니죠. 그럼으로써 자신의 부족한 모습을 고쳐나가는 데 도움을 얻기도 하니까요.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아직 의식(양심) 성찰의 본연의 의미를 이해하지 못한 것이라고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의식 성찰에 대해서는 특히 예수회 소속 신부님들이나 또 다른 많은 분들의 가르침을 쉽게 찾아볼 수 있을 정도로 우리 그리스도교 신앙에서는 고전적인 주제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의식 성찰에 대해서는 자세하게 말씀드리지 않고 우리의 욕구와 관련해서만 다룰 텐데, 그래도 의식 성찰이 어떠한 것인지를 간단히 살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의식 성찰을 하기 위해서는 먼저 일상의 소음으로부터 떨어진 조용한 장소와 시간을 찾습니다. 그리고 그 안에서 고요히 머물면서 지나간 시간들, 예를 들어 오늘 하루 동안 있었던 일들을 마치 영화를 거꾸로 돌려보는 것처럼 회상합니다. 그리고 그러는 중에 마음에 깊이 남아있는 어떤 사건이나 체험, 느낌 등을 발견하게 되면 이제는 그에 주의를 기울이면서 관찰을 합니다. 어떻게 진행된 체험이었는지, 그에 대해 어떠한 느낌이 남아있는지, 그러한 느낌은 어디에서 오는지, 이에 대한 내 자신의 반응은 어떠했는지 등을 구체적으로 살피는 것이죠. 이와 비슷한 느낌을 또 언제 받았었는지도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이러한 의식 성찰은 당연히 성령의 이끄심 안에서 이루어지는 기도이고, 또 그 안에는 감사로 시작하고 주님과의 대화로 마무리한다는 다른 요소들도 있지만 이에 대해서는 더 말씀드리지 않겠습니다.

자, 그렇다면 이러한 의식 성찰 안에서 어떻게 자신 안에 있는 욕구를 발견하고 바라볼 수 있을까요? 지난주에 예로 들었던, 바쁜 와중에도 다른 이의 부탁을 거절하지 못해 곤란을 겪는 어느 신부님의 모습을 기억하시나요? 물론 만들어 낸 예화이긴 하지만, 우리 일상에서 충분히 겪을 수 있는 일입니다.

이 신부님이 하루 일과를 다 마치고 잠자리에 들기 전에 의식 성찰을 하신다면 어떨까요? 조용한 가운데 성령의 도우심을 청하면서 하루 일을 되돌아봅니다. 그런데 그중에 가장 강렬하게 떠오르는 것은 역시 저녁 식사 초대와 관련된 일입니다. 특히 본당으로 급하게 돌아오던 순간에 겪었던 감정들이 다시금 느껴지는데, 그중에서 가장 강하게 남아있는 ‘화’라는 것을 보게 됩니다. 무엇에 그리 화가 났을까 살펴보니, 도로 상황에 대한 화뿐만 아니라 하필 그렇게 바쁜 날 초대하신 분들에 대한 화, 그리고 그 초대를 거절하지 못한 자기 자신에 대한 화입니다. 그런데 가만 생각해 보면, 이런 일이 오늘 한 번 있는 일이 아니라는 것을 보게 됩니다. 예전에도 무리한 상황에서 부탁을 거절하지 못하고, 그래서 곤란한 지경에 처했던 순간들이 여러 번 있었다는 것을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그럼 왜 자신은 늘 그렇게 다른 이의 부탁을 거절하지 못하는 것일까, 다시 바라봅니다. 먼저 떠오르는 것은 ‘모든 이에게 모든 것’이 되어주는 사제로 살고 싶다는 본인의 바람입니다. 하지만 자신의 선택이 그런 바람을 실현시키지 않는다는 것은 분명해 보입니다. 자신이 선택한 행동의 끝에 남는 것은 결국 다른 이에 대한 원망이기 때문입니다. 그럼 어떻게 하는 것이 정말 상대방을 위하는 모습일까 생각해 보면, 정말 무리가 되는 상황에서는 당장은 미안하더라도 다른 이의 청을 정중하게 거절하는 것이 더 낫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그런데 이처럼 부탁을 거절하는 자신의 모습을 그려보려 해도 잘 되지가 않는 거죠. 이건 또 왜 이럴까 가만히 바라보면, 부탁을 거절했을 때 상대방이 자신을 마음에 들어 하지 않거나 자신에게 실망하면 어떡하나 하는 걱정이 자신 안에 있다는 것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그렇게 되면 상대방과의 관계가 끊어져 버릴지도 모른다는, 다르게 말해 혼자 남겨지게 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마음속 깊이에 있는 것을 보게 되는 것입니다.

결국 이 신부님이 다른 이의 부탁을 잘 거절하지 못하는 진짜 이유는, 정말로 상대방을 위하는 마음 때문이 아니라 늘 다른 이와의 친밀한 관계 안에 머물러 있고 싶어 하는 애정의존 욕구 때문이라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너 중심이 아니라 나 중심의 마음과 욕구에서 나오는 선택이고 행동이었다는 것을 의식 성찰을 통해 발견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처럼 의식 성찰 안에서 나의 의식과 생각, 감정의 흐름을 따라가다 보면, 평소에 알지 못하고 있었던 내 마음 깊은 곳에 있는 욕구를 바라볼 수 있게 됩니다. 겉으로 보이는 행동만으로는 알아차릴 수 없는 내면의 참된 욕구입니다.

자, 그렇다면 이렇게 의식 성찰을 통해서 내 안에 있는 욕구가 무엇이었는지를 보게 될 때, 그다음으로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요?

민범식 신부 (가톨릭대학교 신학대학 영성신학 교수)rn서울대교구 소속으로 2003년 사제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