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성

[세상살이 신앙살이] (407) 할아버지와 족보(상)

강석진 신부(한국순교복자성직수도회)
입력일 2017-10-24 수정일 2017-10-24 발행일 2017-10-29 제 3067호 1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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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 평일 미사 때 ‘다윗의 자손이시며 아브라함의 자손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가 복음으로 봉독된 적이 있습니다. 그날 미사 후 아침 식사 시간에 형제들과 대화를 나누던 중에 어느 형제가 족보와 관련된 자신의 이야기를 담담하게 들려주었습니다. 그 이야기를 처음에는 건성으로 듣던 형제들은 이야기가 깊어지자 다들 눈을 동그랗게 뜨고 그 형제의 가족 이야기에 빠져들었습니다.

그 형제가 신학교의 학부 과정을 다닐 때, 당시 교수 신부님께서는 신학생들에게 여름 방학 때 집안의 ‘족보’를 본 후에 자신의 역사를 리포트로 제출하는 과제로 내주었습니다. 그 형제는 그날따라, ‘족보’라는 말이 무척 신선하게 들렸답니다. 그리고 ‘족보’를 통해서 현재 자신의 삶을 돌아보는 과제는 그 형제에게 마치 탄생에 얽힌 비밀 열쇠를 푸는 것과 같다는 생각이 들었답니다.

그래서 그 형제는 그 해 여름 방학 때, 자신의 ‘족보’가 있는 시골 할아버지 댁을 찾아갔습니다. 할아버지와 할머니, 그리고 큰아버지 내외와 사촌 형제들이 사는 시골집이었습니다. 할아버지 집에 도착하자, 마당에 계신 할머니는 그 형제를 꼬옥 껴안아 주었답니다. 큰아버지 내외와 사촌 형제들도 오랜만에 보는 자신을 반갑게 맞이해 주더랍니다. 단, 할아버지만 빼고! 할아버지는 오랜만에 보는 손자였지만, 그날따라 무슨 일이 있는지 표정도 그다지 밝지 않고, 시큰둥한 채 방에 계셨답니다.

그래도 그 형제는 소기의 목적을 달성해야 하므로 시큰둥한 표정의 할아버지께 가서 큰절을 올린 다음 온갖 재롱과 응석을 부렸답니다. 그런 다음 할아버지께 집안의 ‘족보’를 좀 보여 달라고 요청을 했습니다. 그런데 할아버지는 손자의 요청을 단칼에 거절하셨습니다. 그런 다음, 그 형제에게 이렇게 말했답니다.

“너는 아직 성인이 되지 않았기에, 우리 집안의 족보를 볼 자격이 없다.”

형제는 속으로 ‘나이가 30살이 넘었는데, 성인이 아니라니!’ 그래서 그 형제는 할아버지에게 자신은 충분히 성인이며, 집안의 ‘족보’를 볼 자격이 있다고 항변했습니다.

하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집안의 족보를 볼 생각은 말고 저녁이나 먹고 서울로 올라가라’였답니다. 할아버지가 왜 그러시는지도 몰랐고, 상황은 대략 난감했습니다.

그 날 이른 저녁, 할머니와 큰어머니는 ‘우리 신학생, 우리 수사님’ 하면서 한상을 차려주었습니다. 하지만 할아버지 표정이 워낙 근엄했고, 식탁 분위기는 싸늘했답니다. 그리고 식사가 막 시작되려는데, 할아버지가 갑자기 일어나시더니 조용히 방에서 나가셨습니다. 그리고 저녁 식사가 끝날 때 즈음, 큰아버지가 그 형제를 데리고 방으로 가서 큰아버지가 소장하고 있는 집안의 ‘족보’를 보여 주었답니다. ‘족보’를 완고하게 안 보여주시는 할아버지는 마실을 가고, 큰아버지가 몰래 당신 방에 그 형제를 데리고 가서 ‘족보’를 보여주고! 뭔가 짜여진 각본처럼 움직이는 듯한 생각이 들었답니다. 이어서 할머니가 큰아버지 방으로 들어오더니, 그 형제는 자신이 처음 듣는 놀라운 비밀 이야기를 해 주었답니다.

(다음 호에 계속)

강석진 신부(한국순교복자성직수도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