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태/환경

[생태칼럼] 창조설화로 본 창조질서- 존엄과 평등, 존중과 돌봄 / 조현철 신부

조현철 신부(예수회) 녹색연합 상임대표
입력일 2017-10-24 수정일 2017-10-25 발행일 2017-10-29 제 3067호 2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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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능하신 천주 성부, 천지의 창조주를 저는 믿나이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이렇게 신앙고백을 시작한다. 전능하신 하느님은 하늘과 땅, 그 안의 모든 것을 필요에 의해서 ‘자유롭게’ 창조하셨다. 우리가 무엇을 자유롭게 만들었다면, 거기에는 만든 의도가 있다. 유비적으로, 하느님이 자유롭게 창조하신 세상에도 하느님의 의도가 있다. 이 의도는 하느님께서 세상에 심어놓으신 질서, 곧 창조질서에서 찾아볼 수 있다.

성서의 창조설화는 하느님께서 “당신의 모습으로 사람을 창조”하셨다고 전해준다(창세 1,27). 인간은 ‘하느님의 모상’이다. 당시 근동지역에서 ‘신의 모상’이란 표현은 왕에게만 사용되었다. 신의 모상인 왕은 하늘에 있는 신의 대리자로, 신의 뜻을 땅에서 실현하는 존재였다. 반면에, 일반 사람들은 노예로 간주되었다. 그러나 창세기에서는 ‘신의 모상’이 왕만이 아니라 모든 사람에게 사용되었다. 사람은 모두 하느님의 모상이며, 모두가 왕처럼 존엄하다. 인간의 존엄과 평등을 최고조로 강조하는 인간 인식의 혁명적 전환이라 할 수 있다.

하느님의 모상으로 창조된 사람은 하느님으로부터 다른 모든 피조물을 다스리는 권한을 부여받았다(창세 1,28). 그러나 사람의 ‘다스림’은 자의적 권한을 뜻하지 않는다. 하느님의 모상으로서의 다스림은 하느님의 뜻을 실현하는 것이다. “하느님께서 보시니 좋았다.” 하느님의 창조 행위마다 되풀이되는 이 구절은 세상은 인간에게 유용해서가 아니라 그 자체로 좋은 것임을 암시한다. 또한 하느님은 생물을 창조하신 후, 번성하라며 축복하셨다. 요컨대, 하느님은 인간이 모든 피조물을 돌볼 것을 바라시며, 따라서 인간의 다스림의 성격은 ‘돌봄’이다.

존엄과 평등, 존중과 돌봄으로 요약할 수 있는 하느님의 창조질서는 우리가 세상에서 적절하게 행동하기 위한 지침이 된다. 우리가 이 지침을 따라 행동하여 창조질서를 보전하는 것이 정의이며, 정의의 결과로 평화가 이루어진다(「사목헌장」 78항; 이사 32,17). 신앙인으로서 세상에서 하느님의 뜻을 실천한다는 것은 존엄과 평등, 존중과 돌봄의 마음으로 행동한다는 것을 뜻한다. 하지만 세상은 하느님의 뜻을 거스르는 맘몬의 힘이 만연해 있다(「복음의 기쁨」 55항). 하느님의 뜻을 따라 창조질서를 보전하는 것은 쉽지 않으며, 대가를 치러야 하는 경우도 많다.

핵발전은 자연에 없는 200가지 이상의 방사성물질을 배출하고 지역주민들의 희생을 담보로 한다는 점에서 명백한 창조질서의 훼손이다. 하지만 문재인 대통령의 ‘신고리 5,6호기 공사 중단’ 공약은 ‘공론화’를 통한 결정으로 후퇴했고, 결국 공사 재개로 결론이 났다. 종합공정률 30%에 따른 ‘매몰비용’의 힘은 상상외로 컸다. 지난 6월, 중앙행정심판위원회는 설악산 오색케이블카와 관련해 문화재위원회가 내린 문화재현상변경 불허 판결이 문화재 향유권을 고려하지 않아서 잘못이라고 판결했다. 그러나 설악산은 이미 매년 문화재를 향유하러 몰려드는 350여만 명의 방문객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여기서도 국립공원과 천연보호구역인 설악산에 대한 존중과 돌봄보다는 문화재 향유권으로 분칠한 자본의 논리가 횡행한다. 촛불과 광장의 힘으로 새로운 시대를 열었지만, 창조질서 보전으로 세상의 정의와 평화를 이루기 위해 갈 길이 아직 멀다는 것을 실감하는 요즘이다.

조현철 신부(예수회) 녹색연합 상임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