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영혼을 여는 문 ‘이콘’] 성녀 안나

장긍선 신부 (서울대교구 이콘연구소 소장)rn국내 이콘 분야에서는 최고 전문가로 꼽힌다.
입력일 2017-10-24 수정일 2017-10-24 발행일 2017-10-29 제 3067호 1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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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아 낳아 주님께 봉헌

‘성녀 안나’.

성경에서는 성모 마리아의 부모에 대해선 언급하지 않고 있다. 하지만 성경의 정경 목록에 들어가지 않는 위경(Apocrypha)으로 간주되는 책들 중 ‘야고보 원복음서’(Protoevangelium Jacobi)는 마리아 부모의 이름이 요아킴(Joachim)과 안나(Anna)라고 전해주며, 마리아의 어린 시절에 관한 귀중한 정보도 전해주고 있다. 물론 교회에서 위경으로 간주한 만큼 이 책에 실린 모든 내용을 신뢰할 수는 없지만, 초대교회에 널리 퍼져 있었던 전승들을 담고 있어 초기교회 연구에 있어서는 귀중한 자료다.

‘야고보 원복음서’에 따르면, 요아킴은 이스라엘에서 존경받는 인물이었으며 부유했고, 그의 아내 안나는 베들레헴에서 태어났다고 한다. 또 다른 전승에 의하면 안나는 나자렛 태생으로 유목민 아카르의 딸이라고도 한다. 이들은 결혼한 지 20년이 지나도록 아이가 없었다. 이스라엘에서 아이가 없다는 것은 하느님의 축복을 받지 못하는 것으로 여겨졌기 때문에, 요아킴은 광야로 나가 40일간 단식하며 하느님께 자식을 청하는 기도를 바쳤고, 안나 또한 집에서 하느님께 울며 기도를 바쳤다.

하느님께서는 이들 부부의 간절한 기도를 들으시고, 한 천사를 안나에게 보내 이제 잉태해 낳을 아이는 온 세상에 그 이름을 떨칠 것이라고 예고했다. 이에 안나는 그 아이를 낳으면 주님께 봉헌하겠다고 약속했다. 요아킴도 광야에서 기도하던 중 이와 비슷한 환시를 보고 기뻐하며 집으로 돌아왔다. 그 후 요아킴과 안나는 딸을 낳았고, 그 아기에게 마리아라는 이름을 지어 주었다. 아이가 3살이 되었을 때, 요아킴과 안나는 하느님께 약속한 대로 마리아를 예루살렘 성전으로 데려가 맡겼다고 한다. 비록 정경은 아니지만 초기 교회의 많은 교부들이 이 ‘야고보 원복음서’를 인용하면서, 동방교회에서는 성모 마리아의 성전 봉헌 축일은 물론 그 어머니 안나와 아버지 요아킴의 축일을 6세기경부터 마리아 탄생 축일 다음날인 9월 9일에 지내기 시작했다. 특히 다마스쿠스의 성 요한 사제학자는 요아킴과 안나에 대해 찬양하는 저술을 하며, 안나를 구약 시대의 유명한 예언자 사무엘의 어머니 한나(Hanna)와 비슷하다고 기록했다. 8세기 초 안나의 유해가 이스라엘에서 콘스탄티노플로 옮겨지고 황제 유스티아노 2세가 그 무덤 위에 웅장한 성당을 건립하면서, 동방교회 전역에 성녀 안나를 기념하는 성당들이 많이 세워지게 됐다. 그 후 안나의 전구로 많은 기적이 일어났으므로 안나를 수호 성녀로 모시는 수도원도 많이 설립됐다.

서방 가톨릭에서는 성 요아킴의 축일을 8월 16일, 성녀 안나의 축일을 7월 26일에 따로 기념하다 제2차 바티칸공의회 이후부터는 7월 26일에 합쳐서 기념하고 있다.

동방교회에서는 6세기 전통대로 9월 9일에 동시에 두 사람의 기념일을 지낸다.

장긍선 신부 (서울대교구 이콘연구소 소장)rn국내 이콘 분야에서는 최고 전문가로 꼽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