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성

[세상살이 신앙살이] (406) 하느님의 목소리

강석진 신부(한국순교복자성직수도회)
입력일 2017-10-17 수정일 2017-10-17 발행일 2017-10-22 제 3066호 1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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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수도원 형제들이 공동방에서 일상의 대화를 나누며 간식을 먹는데, 형제들이 함께 있던 A형제에게 말했습니다.

“수사님, 내일 미사는 다 차리셨어요?”

그러자 이 말이 무슨 뜻인지를 아는 듯 형제들은 재미있는 듯 웃었습니다. A형제도 웃으며 ‘간식은 먹고 미사 차리러 간다’고 말했습니다. 그래서 나는 형제들에게 물었습니다.

“무슨 일 있었어?”

그러자 어느 형제가 말하기를,

“예전에 수도원 종신서원식이 끝나고 저녁에 축하 행사가 있었잖아요. 그날따라 A형제가 못 먹는 술을 좀 많이 마셨어요. 축하식이 끝나고, 뒷정리를 한 후에 젊은 형제들 몇 사람이 식당에 남아, 술을 몇 잔 더 했어요. 그런데 A형제가 갑자기 사라진 거예요. 그 날 바깥 날씨가 추웠는데. 한참 지나도 안 나타나기에 동창인 K형제가 A형제를 찾으러 갔어요. 찾다가 보니 성당에 불이 켜져 있더라고요. 그런데 A형제는 미사 제대를 차린 후, 주례 사제용 의자에 앉아서 졸고 있었대요. 혼자 성당에 가서 미사 준비를 하다가 무섭고 긴장한 나머지 의자에 앉아 있다가 그만 잠들어 버린 거예요.”

나는 별 이야기가 아닌 듯해 한 마디 했습니다.

“성당에서 미사 차리다 졸았던 것이 웃긴 일이었어? 이그, 다들 싱겁기는!”

그러자 옆에 있는 또 다른 형제가,

“그 사건이 그렇게 끝났다면 정말 재미가 없죠. 이야기는 지금부터예요. 사라진 형제를 성당에서 찾은 동창 수사님은 졸고 있는 형제의 얼굴을 바라보다가, 안도감과 함께 갑자기 장난기가 발동한 거예요. 그래서 성당의 불을 다 끈 후, 제의방으로 가서 몸을 숨겼답니다. 그런 다음 울림이 있는 굵은 목소리로 A형제의 이름을 천천히 크게 불렀어요. ‘○○야. ○○야’. 그러자 졸고 있던 A형제가 벌떡 일어나더니, ‘예, 주님, 부르셨습니까?’ 하더랍니다. K형제는 이 상황이 너무 웃겨 혀를 깨물 뻔했대요. 그런데 평소 겁이 많은 A형제는 성당에 불이 꺼진 것을 알고 성당 밖으로 도망치듯 뛰쳐나가 자기 방까지 뒤도 안 돌아보고 뛰어 들어가더래요. 형제들이 A형제의 방에 가서 무슨 일 있었냐고 물었더니, 긴장한 A형제는 아무 말도 못한 채 피곤해서 잘 거라는 이야기만 했대요. A형제는 자신의 이름을 부르는 소리는 분명히 들었는데. 진짜로 하느님이 불렀는지 아니면…. 그런데 수도자가 성당에서 귀신 소리를 들었다고 하면 이건 더욱 말도 안 되는 소리고. 그래서 그다음 날까지 A형제는 잠을 못 잔 거예요. 그다음 날 저녁 K형제는 전날 있었던 이야기를 A형제에게 솔직하게 해 주었고, 그 이야기를 들은 형제들 모두가 박장대소를 했답니다. 그런데 실제로 A형제는 그다음 날 하루 종일 하느님이 자신을 부른 것 같은데 왜 부르셨을까 고민도 했답니다.”

그 이야기를 들으면서, “예, 주님, 부르셨습니까?” 하고 응답한 A형제가 기특했습니다. 어떤 목소리든 “예, 주님, 부르셨습니까?” 하고 대답했던 그 모습은 부르심을 받고 살아가는 우리들의 본래 가져야 할 마음 자세이기 때문입니다.

강석진 신부(한국순교복자성직수도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