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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기조종사의 병영일기] 호상(好喪)

이연세 (요셉) 대령rn육군 항공작전사령부
입력일 2017-10-17 수정일 2017-10-17 발행일 2017-10-22 제 3066호 2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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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막한 저녁나절, 초인종이 “딩동” 울렸습니다. 현관문을 열자 주문한 제기상자가 배달됐습니다. 엉겁결에 물건을 건네받으니, 가슴이 “쿵”하고 내려앉으며 참았던 눈물이 왈칵 쏟아졌습니다. 늘 환한 미소로 반겨주던 아버지를 이제 이승에서는 다시 볼 수 없다는 걸 실감했기 때문입니다.

2017년 8월 23일 새벽 1시10분, 아버지는 88년 고단한 삶의 여정(旅程)을 마치고 가족의 곁을 떠났습니다. 하늘이 무너지는 듯한 아픔이었지만 장남으로서 집안의 중심을 지켜야 했기에 입술을 깨물고 흐르는 눈물을 참았습니다. 그동안 무릎관절염 등으로 고생은 했지만, 경제권을 가지고 왕성하게 활동하셔서 그렇게 빨리 허망하게 돌아가실 줄은 미처 몰랐습니다.

한밤중에 넘어져 고관절 골절상을 당한 이후 채 석 달이 안 됐습니다. 고관절 수술의 늪 속에서 하루가 다르게 야위어 가는 아버지를 바라보는 것은 고통 그 자체였습니다. 입원하고 얼마 지나지 않았는데도 정말 이상하게 뼈만 앙상하게 드러났습니다. 주치의는 최소 3개월은 입원을 해야 한다고 했지만 수술을 마치자마자 아버지는 퇴원을 강력하게 원했습니다. “아들아! 하루를 살아도 편하게 살고 싶어. 죽어도 좋으니 집으로 가게 해줘.” 우리 6남매는 할 수 없이 아버지를 집으로 모셨습니다. 그리고 정성을 다해 간호했지만, 결국에는….

배달된 제기를 정리하니, 50여 년 나의 삶에 정신적, 육체적으로 연결됐던 아버지와의 끈이 실타래처럼 줄줄이 달려 나왔습니다. 딸 둘을 낳고 얻은 아들이라 끔찍하게 여기며 초등학교 때까지 늘 안아 재웠고, 큰집에서 저녁식사를 하고 돌아오던 어떤 날엔 시큼한 막걸리 냄새가 은은하게 풍기는 넓은 등으로 다 큰 저를 업고 돌아오기도 했습니다. 특히 학창시절에는 “남자는 모든 것을 할 줄 알아야 해”라며 모질게 농사일을 시켰지만, 군에 입대한 후 휴가를 가면 “힘들게 나라 지키는데 집에서라도 편히 쉬어야지” 하며 일절 일을 시키지 않으셨습니다.

사람들은 말했습니다. “그 정도 사셨으면 호상(好喪)이네!” 그러나 호상이라는 말에 동의할 수 없습니다. 30여 년 군에 복무하며 아버지와 마음 편하게 시간을 보낸 적이 없었습니다. 1년에 몇 번 찾아뵙지도 못했고 그마저도 당일치기가 대부분이었습니다. 몇 년 전부터 작별인사를 드리면 “오늘도 바로 가는구나. 자고 갔으면 좋으련만” 하며 눈물을 글썽거리곤 하셨습니다. 군생활을 마감하려는 지금, 아버지와 함께할 여유로운 시간이 생겼는데 말이죠.

더구나 정말 안타깝고 아쉬운 이유는 또 있습니다. 전통적인 관습을 철저히 지키며 살았던 아버지께 용기 내어 적극적으로 전교하지 못한 것입니다. 그래서 아버지를 참으로 좋으신 하느님께 인도하지 못했습니다. 하느님을 알고 하느님을 굳게 믿으며, 귀천(歸天)하는 순간 웃으며 떠날 수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하느님! 비록 당신을 모르고 살았지만, 선하고 바르게 살고자 노력한 당신의 종에게 천국의 문을 열어주실 것을 두 손 모아 간절하게 기도드립니다. 아멘!

이연세 (요셉) 대령rn육군 항공작전사령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