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성

[민범식 신부의 쉽게 풀어쓰는 기도 이야기] 나 중심으로 움직이게 하는 욕구

민범식 신부 (가톨릭대학교 신학대학 영성신학 교수)rn서울대교구 소속으로 2003년 사제서
입력일 2017-10-10 수정일 2017-10-10 발행일 2017-10-15 제 3065호 16면
스크랩아이콘
인쇄아이콘
원망하는 마음, 영성의 길은 멀어집니다
자기 보호에 급급하고 불만 쌓다 보면 이상 실현 못하고 현실에 머물게 돼

찬미 예수님.

지난주에 말씀드린 것처럼 욕구라는 것은 나로 하여금 어떠한 행동을 하도록 이끌어가는 내적인 힘을 의미합니다. 누구나 자기 자신이 바라는, 되고 싶어 하는 어떤 모습을 이상으로 가지고 있지만 현실에서는 그렇지 못한 자신의 모습을 보게 된다고 할 때, 이렇게 이상과는 다른 모습으로 나 자신을 이끌어 가는 힘이 욕구인 것이죠.

학자인 헨리 머레이(Henry Murray)는 인간 욕구에 대한 연구를 통해서 20가지의 기본 욕구를 제안합니다. 물론 사람에 따라서 더 강하게 느끼는 욕구는 다를 수 있지만, 그래도 인간이라면 누구나 가질 수 있는 욕구를 정리해서 제시한 것이죠. 그런데 예수회 루이지 마리아 룰라(Luigi M. Rulla) 신부님은 머레이가 제안한 욕구를 수정, 보완해서 21가지의 욕구로 다시 제안합니다. 그리고 이 욕구들을 세 부류로 나누는데, 이러한 구별을 하는 기준은 그 욕구들이 우리의 행동과 삶을 어떠한 방향으로 이끌어 가느냐 하는 것입니다.

전에 말씀드린 것처럼 우리 신앙인에게 가장 중요한 근본 가치는 바로 ‘하느님과의 일치’ 그리고 ‘그리스도를 뒤따름’입니다. 지금까지 이 글을 통해 다루었던 관점에서 표현하면 나 중심이 아닌 너 중심으로 사는 삶이라고 할 수 있죠. 그런데 우리 누구나가 지닐 수 있는 21가지 욕구들 중에서 몇몇 욕구들은 우리로 하여금 너 중심이 아니라 자꾸만 나 중심으로 움직이게끔 우리를 강하게 부추기는 욕구들이라는 것입니다. 룰라 신부님이 이야기하는 이러한 욕구에는 ‘공격욕’ ‘과시욕’ ‘비난이나 실패를 회피하려는 욕구’ ‘신체적 상해를 피하려는 욕구’ ‘성적 만족욕’ ‘애정의존욕’ 그리고 ‘자기비하욕’의 7가지가 있습니다. 그리고 이 욕구들보다 덜하기는 하지만 여전히 우리를 나 중심으로 이끌어가려는 힘을 지닌 7가지의 욕구, 곧 ‘성취욕’ ‘친화욕’ ‘지식욕’ ‘지배욕’ ‘양육욕’ ‘조직화의 욕구’ ‘반동의 욕구’가 있습니다. 나머지 7가지 욕구들은 머레이가 이야기한 인간의 기본 욕구에 속하기는 하지만 우리 신앙인의 나 중심-너 중심의 방향성과는 큰 상관이 없는 욕구들로서 ‘획득’ ‘자율성’ ‘변화’ ‘순종’ ‘흥분’ ‘놀이’ ‘인정’이라는 욕구들입니다.

이러한 욕구들의 각각의 내용에 대해서 더 자세하게 말씀드리면 좋겠지만, 지금 이 자리에서 구체적인 내용을 다 다루는 것은 적절치 않은 것 같습니다. 다만, 처음의 7가지 욕구들이 우리가 너 중심의 삶으로 파스카 하려는 것을 어떻게 방해하는지, 어떻게 우리를 자꾸만 나 중심으로 움직이도록 만드는지에 대해서 조금 더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예를 들어 하느님 사랑과 이웃 사랑을 살고 싶어 하는 어떤 신부님이 계시다고 생각해 봅시다. 이 신부님이 추구하는 가치는 무엇일까요? 네, 바로 사랑이라는 객관적인 가치입니다. 그리고 조금 더 구체적으로는, 그러한 사랑을 실천하는 사제로 살아가는 것이 이 신부님이 바라는 이상적인 모습입니다. 이러한 이상을 실현하기 위해 신부님께서는 실제로 사목생활 안에서 최선을 다 하십니다. 맡겨진 성무를 충실히 수행하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신자분들의 요구에 늘 관대한 마음으로 응하려고 애쓰십니다. 자기 시간이나 노력을 신자들을 위해 내어주시는 모습이죠.

그런데 이렇게 사랑을 실천하는 사제가 되기 위해서 애쓰는 자신의 모습이 만족스럽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늘 피곤함을 느끼기도 합니다. 육체적 피로뿐만 아니라 왠지 모를 스트레스와 긴장 때문에 늘 피곤하고, 때로는 이유를 알 수 없는 화가 충동적으로 일어나는 것을 경험하기도 합니다. 사목활동에 최선을 다 한다고 생각하는데, 간혹 그런 신부님에게 만족하지 못하고 불만을 표출하거나 또는 본당 일에 대해서 아쉬운 소리를 하시는 신자분들을 만날 때면 괜히 서운한 마음도 들고 때론 원망하는 마음까지도 생기죠. 그런데 또 어려운 것은, 이처럼 사목자로 살아가는 것에 피곤을 느끼고 때로는 신자분들에게 서운한 마음, 원망의 마음을 느끼는 자기 자신이 못마땅하게 여겨진다는 사실입니다. 이상과는 다르게 살아가는 현실의 자기 모습이 마음에 들지 않는 것입니다. 이상과 현실 사이의 긴장관계죠. 이런 긴장관계 때문에라도 더 사목활동에 애를 써 보지만 그 안에서 느껴지는 피로와 서운함, 충동적인 화, 그리고 그런 자신에 대한 불만은 사라지지 않고 계속됩니다.

자, 그렇다면 이 신부님께서 겪고 있는 이러한 긴장 관계 안에서 특히 현실의 모습을 이루는 데에 영향을 주는 욕구는 무엇일까요? 예를 들어, 룰라 신부님이 이야기하는 처음 7가지의 욕구들 중에서 찾아본다면 먼저 ‘비난이나 실패를 회피하려는 욕구’를 생각할 수 있습니다. 신부님 스스로는 하느님 사랑과 이웃 사랑이라는 객관적 가치를 추구하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그 안에서 실제로 신부님을 움직여가는 힘은 ‘잘 살지 못하는 사제’ ‘사목자로서의 능력이 없는 사제’라는 비난을 받기 싫은 마음일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 비난을 받고 싶지 않아서, 스스로 실패자라는 느낌을 갖고 싶지 않아서 애쓰는 시간들이기 때문에 그 안에서 늘 긴장할 수밖에 없고, 그렇기 때문에 만성적인 피로를 느끼게 되는 것이죠. 혹여나 자신의 사목활동에 대해서 만족스러워하지 않는 누군가를 만나게 되면 당연히 서운한 마음, 원망하는 마음이 생기게 됩니다. 자신이 피하고자 했던 비난과 실패를 경험하는 것이니까요. 정말로 하느님을 위하고 다른 사람을 위하는 너 중심의 모습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지키고 보호하려는 나 중심의 모습입니다.

또 다른 욕구라면 ‘애정의존’ 욕구를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그 신부님께서 그렇게 자기 자신을 신자분들을 위해 내어주는 진짜 이유는, 그렇게 함으로써 다른 이들로부터 애정을 얻기 위한 욕구 때문일 수 있다는 겁니다. 여기서의 애정은 서로 건강하게 주고받는 양방향의 애정이 아니라, 어찌 되었든 나 자신이 다른 사람에게 사랑받아야 한다는 일방적인 애정 욕구입니다. 이런 욕구로 움직이는 것이기 때문에, 혹여나 다른 이로부터 비난을 받고 배척받으면 어떡하나 하는 걱정이 늘 있게 마련이고, 어쩌다 그런 걱정이 현실로 이어지게 되면 그렇게 자신을 받아들이지 않는 상대방에게 서운함을 넘어서 배신감과 화를 느끼게 되는 것이죠. 이 역시도, 참으로 다른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 아닌 자기 자신만을 위하는 나 중심의 모습입니다.

이처럼 우리 안에 있는 욕구들, 특히 룰라 신부님이 이야기하는 처음 7가지의 욕구들은 너 중심이 아니라 나 중심으로 움직이도록 자꾸만 우리를 부추기는 힘입니다. 이 욕구들을 따라갈 때 우리는 신앙인으로서의 이상적인 모습을 향해 나아가지 못하고 현실의 나의 모습 안에만 머물러 있게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욕구에 대해서 계속해서 더 말씀드리겠습니다.

민범식 신부 (가톨릭대학교 신학대학 영성신학 교수)rn서울대교구 소속으로 2003년 사제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