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성

[세상살이 신앙살이] (405) 형제가 하느님이었어?

강석진 신부(한국순교복자성직수도회)
입력일 2017-10-10 수정일 2017-10-10 발행일 2017-10-15 제 3065호 1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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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본원에서 함께 살다가 새로운 소임을 받아 지금은 다른 수도원에서 살고 있는 후배 신부님이, 수도원 저녁 식탁에서 들려준 이야기가 생각이 납니다. 그 신부님은 언젠가 자신의 5살짜리 어린 조카의 세례식을 축하해 주러 조카가 다니는 본당에 간 일이 있었습니다.

그 날 세례식은 본당 신부님께서 주례를 하셨고, 후배 신부는 본당 신부님 옆에서 복사를 섰답니다. 그리고 본당 신부님은 조카의 세례 때는 후배 신부가 할 수 있도록 배려해 주더랍니다. 세례식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세례수가 이마에 닿자 그만 울어버리는 아이도 있고, 다른 꼬마들은 두 손을 모은 채 세례를 받기도 했답니다.

세례식이 끝나고, 본당 주임신부님을 비롯해 세례받은 아이들 모두 단체 사진을 찍은 후에야 공식적인 세례식 행사는 마무리됐습니다. 그런 다음 본당 신부님은 사제관으로 들어갔고, 후배 신부는 조카랑 사진을 찍고 있었습니다. 그때 함께 세례를 받은 다른 가족들도 로만칼라를 한 후배 신부와 기념으로 함께 사진을 찍자고 요청했습니다. 그래서 ‘사자가 없는 숲에 토끼가 왕이 된 듯’, 본당 주임 신부님이 안 계신 성당 안에서 마치 후배 신부가 본당 신부님의 대행 역할을 한 듯 분주히 사진을 찍었답니다.

그렇게 후배 신부는 여기저기 불려가서 사진을 찍고 있는데, 성모님 상 앞에서 자리를 잡은 어느 남자 아이네 집 식구들도 함께 사진을 찍자고 부르더랍니다. 그래서 후배 신부는 거기 가서도 사진을 찍으려는데, 그 집의 세례받은 아이는 사진을 안 찍으려 했습니다. 아마도 검정 색 옷을 입은 후배 신부의 모습이 낯설고 무서웠던 모양입니다. 후배 신부는 그 아이에게 다가가 악수를 청하고 축하한다며 재롱도 부렸는데, 아이는 그게 더 무서워 엄마에게로 도망가더니 엄마의 바짓가랑이를 붙잡고 숨더랍니다.

그래도 후배 신부는 사진 한 장 찍는 것이 뭐 어렵겠느냐며, 성모님 상 앞에 어정쩡하게 서서 그 집 식구들과 기념사진을 찍었습니다. 그렇게 세례식 이후 사진 찍는 행사도 끝나고 모두가 다 축하식이 준비된 교리실에 가려고 소지품을 챙긴 후 성당에서 나오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후배 신부의 5살 된 조카가 사진을 안 찍으려는 아이에게 다가가, 양손을 허리춤에 얹고는 이렇게 말하더랍니다.

“야, 너 우리 하느님이랑 왜 사진을 안 찍어! 왜 하느님이랑 사진을 안 찍는 거야.”

그 순간 성당 안에 침묵이 흐른 후, 이어서 모두가 환하게 웃었답니다. 후배 신부의 조카가 했던 표현이 너무나도 아이다웠고, 해맑았던 것입니다. 그 날 후배 신부의 이야기를 재밌게 듣고 있던 수도원 형제들은 곧바로 그 조카의 말을 인용하며, 이구동성으로 말했습니다.

“형제가 하느님이야? 형제가 하느님이었어? 세상이 왜 이래, 좀 잘 해봐. 하느님, 어떻게 좀 잘 해봐!”

‘하느님’. 많은 것을 묵상케 하는 말입니다. 우리 모두는 하느님의 모상으로 지어진 사람이고, 하느님을 닮은 사람입니다. 하느님을 품고 있는 사람답게, 하느님 닮은 사람을 언제나 사랑하며 산다면 우리는 결국 하느님의 것이 됩니다.

강석진 신부(한국순교복자성직수도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