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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마당] 30년 병원선교 경험,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 (하)

인천교구 병원선교사 김년웅(바오로·학익본당)
입력일 2017-10-10 수정일 2017-10-10 발행일 2017-10-15 제 3065호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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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교를 하다 보면 종종 환자와 가족들에게 이런 말을 들을 때가 있습니다.

“저도 예비자 교리를 받았는데, 받다가 기간이 너무 길어서 중도에 포기했습니다. 예비자 교리를 없애든지 아니면 한 달 정도 만에 끝내 주시면 안 될까요?”

곰곰이 생각해보니 아예 틀린 말은 아닌 것 같습니다. 요즘은 예비자 교리 기간이 꽤 깁니다. 그렇게 많은 시간을 들여 오래 공부하고 어렵게 영세 받은 신자들인데, 왜 냉담을 할까요? 제 생각에 냉담은 예비자 교리 기간과는 아무 상관 없이 ‘가시덤불에 떨어진 씨처럼’(마태 13,7) 어렵고 힘든 인생살이와 신앙생활 안에서 발생하는 여러 가지 상황 속에서 생겨나는 것이 아닐까 합니다.

저희들이 영세 받을 때에는 예비자 교리라는 것이 없었습니다. 성당에서 주는 기도문과 “사람은 왜 세상에 태어났느뇨”라고 시작되는 천주교 요리문답책 한 권만 외우고 찰고를 받으면 바로 영세를 주셨습니다. 그렇게 쉽게 영세 받은 제 또래 신자들이지만, 지금 성당 앞뒤 자리를 든든히 지키고 있지 않습니까?

그때와 지금은 시대가 다르다고 말씀하실 수도 있겠죠. 시대가 다르기 때문에 더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요즘 젊은 사람들 더 영리하고 더 많이 배웠습니다. 굳이 오래 붙잡고 가르쳐야 할 이유가 없습니다. 시간을 쪼개어 써도 바쁘다는 사람들이 큰마음 먹고 성당까지 찾아왔는데 긴 예비자 교리 때문에 중간에 포기했다는 말을 들으면 속상할 때가 많습니다.

병실에 들어가서 “성당에서 왔습니다” 인사하고는 환자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성당 안 다니세요” 하고 묻는 것으로 병원선교 활동을 시작합니다. 우리 교우들 중 “저 성당에 다녀요” 하고 큰 소리로 대답하는 사람은 극히 적기 때문입니다. 한 명 한 명 붙잡고 물어야 “네, 다녀요” 하고 작은 소리로 대답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그리고 어정쩡한 표정을 짓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런 사람들은 대개 냉담자입니다. 사랑병원에서의 일입니다. 한 자매가 어색한 표정을 짓길래 “지금 쉬고 계세요?” 하고 물으니 “네” 하고 대답합니다. “왜요” 하고 물으니 “조당 때문에요”라는 답이 돌아옵니다. 그래서 “자매님, 조당 푸는 거 어렵지 않아요. 신부님께 자세히 말씀드리고 도와달라고 하시면 도와주실 거예요” 했더니 “알고 있어요. 그런데 제가 이혼녀라는 거 드러내고 싶지도 않고 절차도 까다로운 것 같아서 그냥 쉬고 있어요”랍니다. 방법을 알고 있는데도 하기가 어렵다니 더 이상 권할 방법도 없어서 “자매님 비록 지금 성당에 못 나가도 기도는 꼭 하세요. 하느님, 성모님께서 도와주실 거예요”라고 말하고 돌아서는데, 자매님이 저에게 슬픈 목소리로 한마디 합니다. “저처럼 마음 아픈 사람들, 성당에서는 묻지도 따지지도 말고 그냥 품어 안아주시면 안 되는 걸까요?”

저는 생각해 보았습니다. 지금 이 자리에 예수님이 계시다면 무어라 말씀하실까. 개신교회에는 길고 긴 예비자 교리도, 교회법도, 조당이라는 단어도 없지 않습니까. 없어도 사람들은 열심히 잘 믿지 않습니까? 우리 천주교회도 여러 가지로 고민이 필요할 때인 것 같습니다.

인천교구 병원선교사 김년웅(바오로·학익본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