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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화해·일치] 도움받는 존재에서 도움 주는 존재로 / 윤완준

윤완준 (테오도로) 동아일보 베이징 특파원
입력일 2017-10-10 수정일 2017-10-11 발행일 2017-10-15 제 3065호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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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3월 만난 원정옥씨는 북한 출신 주민으로 구성된 파랑새봉사단장이었다. 그는 자신이 사는 동네의 홀몸 노인, 장애인들에게 도시락을 전해주는 봉사를 했다. 처음엔 도시락을 건네주니 한 노인이 “내가 거지냐, 북한 사람이 준 걸 왜 먹느냐”며 문을 쾅 닫아버리는 일도 있었다. 원씨는 “생활이 어려운 이들조차 북한 사람들은 자신보다 못하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는 생각에 크게 좌절했다”고 말했다.

그러던 어느 날 도시락을 전할 때마다 밝은 모습으로 맞아주던 한 장애인에게 용기를 내 자신이 북한 출신 주민이라는 사실을 밝혔다. 그 장애인은 “북한 출신 주민이면 어떠냐. 나를 도우려 찾아와줬다는 것만으로 감사한다”고 답했다. 원씨는 그때 그 말이 자신에게 큰 깨달음을 줬고 이후 자신감을 찾았다고 말했다. 모든 이들이 자신에게 편견을 가질 것이라는 생각이 편견이라는 걸 알게 됐다고 했다.

며칠 뒤 만난 최동현 겨레얼학교 대표는 택시운전을 하면서 북한 출신 청소년을 돕고 있었다. 그 역시 북한 출신 주민이었다. 오후 9시부터 다음날 오전 9시까지 택시운전을 하고 낮에는 봉사활동을 했다. 그가 봉사를 시작한 것은 5년 전 딸의 일기를 몰래 본 뒤부터였다고 했다. “학교에 가니 아이들이 빙 둘러싸 동물원 동물처럼 나를 구경했다”는 구절에 눈시울을 붉혔다. 그가 돕던 청소년들 중 상당수가 당시 탈북 여성들이 중국에서 낳은 자녀들이었다. 이들은 정착지원의 사각지대에 있어서 더욱 어려운 처지였다. 그는 이 학생들과 함께 장애인복지관을 찾아 어려운 이들을 돕고, 일부 학생들은 해외에 의료봉사를 보내기도 한다고 말했다.

그는 “택시운전을 하는 북한 출신 주민이 아이들을 돕는다니 미련곰탱이 같죠?”라며 밝게 웃었다. 그때 그가 해준 말이 잊히지 않는다. 그는 “아이들이 성장하는 만큼 나도 발전한다”며 “한국에서 사는 긍지와 보람을 느낀다”고 말했다. “그러니 나만큼 행복한 사람이 어디 있겠느냐”며 “진짜 사랑, 배려, 나눔을 한국에서 배웠다”고 말했다. 삶을 긍정하는 그의 환한 웃음에 필자 역시 행복했다. 노인들에게 무료급식 봉사를 하는 강순희씨는 “봉사활동을 하면서 이 사회에 한몫을 하고 있구나 하는 자부심을 느끼고 이런 마음이 어떤 지원보다 더 큰 버팀목이 된다”고 말했다.

그때 만난 북한 출신 주민들은 모두 자신이 ‘도움만 받는 존재’가 아니라고 말했다. 취재를 위한 만남이었지만 북한 출신이라면 도움의 대상이자 지원의 대상으로만 생각하는 편견을 반성하고 성찰하게 하는 기회가 됐다. 여전히 북한 출신 주민의 정착을 돕는 많은 활동이 일방적인 지원에 머물고 있는 것 같다. 많은 북한 출신 주민들이 자신들을 단지 수혜의 대상으로 보지 말아 달라고 말한다. 그런 생각 자체가 북한 출신 주민을 ‘2등 시민’으로 여기게 한다는 것이다. 앞으로는 북한 출신 주민들과 의미 있는 일을 함께 해보면 어떨까.

윤완준 (테오도로) 동아일보 베이징 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