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성

[세상살이 신앙살이] (404)욕구와 갈증

강석진 신부(한국순교복자성직수도회)
입력일 2017-09-26 수정일 2017-09-26 발행일 2017-10-01 제 3064호 1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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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도보 순례를 할 때의 일입니다. 당시 진천 지역의 관상 수녀원을 숙소로 정한 후, 그곳을 중심으로 교우촌을 찾아보고, 성지를 순례했습니다. 점심시간이 되어 수녀원의 손님 식당에 갔더니, 식탁 위에는 곰탕과 함께 밭에서 갓 딴 여러 종류의 채소가 있었습니다. 채소가 너무 맛있어서, 원장 수녀님께 채소를 더 주십사하고 부탁했고, 고추장과 된장도 많이 달라고 주문했습니다.

수녀원의 고추장과 된장이 어찌 그리도 고소한지요…. 기쁘게 잘 먹고 있는 나를 보고 원장 수녀님께선 좋아하시면서도 “고추장과 된장을 너무 많이 먹으면 짤 텐데” 하는 걱정과 당부의 말씀도 하셨습니다. 그래도 나는 “맛있는 걸 어떡해요!” 하며, 고추장과 된장을 엄청나게 먹어 치웠습니다.

그리고 오후엔 순례의 길을 떠났습니다. 오후 1시에 출발해서 5시30분에 숙소로 돌아왔으니, 왕복 4시간 30분 정도 길을 걸었습니다. 순례 때마다 느끼는 것이지만, 한국의 길 위에서는 무시무시한 트럭들이 너무 빨리 달려서 걷기가 두려울 지경입니다. 그래서 도보 순례를 하기엔 아주 불편한 나라임을 새삼 확인하게 됩니다.

그날 순례의 목적지는 백곡 공소였습니다. 입구에는 두 분의 순교자 무덤이 나란히 안장돼 있는데 왼쪽이 올케, 오른쪽은 시누이 무덤이었습니다. 시누이와 올케가 함께 순교한 후 나란히 묻혀있는 무덤을 보면서, 많은 것을 묵상할 수 있었습니다. 특히 한국사회에서 관계 갈등의 대명사격인 동서지간, 시누이와 올케, 또 시어머니와 며느리. 그런데 그들이 갈등을 겪는 이유는 실로 당연합니다. 원래 그들은 살아온 방식이 전혀 다른데 결혼으로 인해 한순간 가족으로 묶여 살기 때문입니다. 배우자 때문에 가족이 된 것이지, 그냥은 원래 남남입니다. 백곡 공소에 누워계신 시누이와 올케는 평소 얼마나 서로 사랑하며 살았기에 함께 순교하고, 이렇게 나란히 묻혀있는 것일까요. 순례를 마치고 숙소로 돌아오는 길에 ‘갈등’이라는 단어를 가지고 묵상했습니다.

갈등, 갈등이라! 그런데 그날따라 평소보다 갈증이 더 났습니다. 원래 하루 순례 길을 걸을 때면 500ml 물 한 통이면 충분했는데, 그날은 한 통 이상을 이미 마셨는데도 갈증이 났습니다. 마침내 물은 다 떨어졌고, 아무리 걸어도 주변에는 가게 하나 없었습니다. 갈증이 너무 심해지자 힘겨움까지 겹쳐, 숙소까지 기어오듯이 걸었습니다. 숙소로 돌아오자마자 나는 1000ml 정도의 물을 마셨습니다. 그리고 안도의 한숨을 쉰 후, 내 자신에게 물었습니다. ‘오늘은 왜 이리 갈증이 심했지?’

묵상 중에 답을 찾았습니다. 그날 점심때 과도하게 먹은 ‘고추장’과 ‘된장’이 원인이었습니다. 수녀님께선 많이 먹으면 짤 것이라고 분명 말씀을 하셨는데도, 나는 그릇된 욕구에 이끌려 과도한 양의 고추장과 된장을 먹었던 것입니다. 과도한 욕구가 결국은 사욕이 됐고, 결국 심한 갈증을 일으켰던 것입니다.

이것은 관계 안에서 겪는 모든 갈등의 시작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랑받고 싶은 욕구가 과도할 때 갈증이 유발됩니다. 과도한 욕구는 갈증을 낳고, 이 갈증은 사욕을, 그리고 사욕은 갈등의 원인이 됩니다.

평소 사람에 대한 욕구를 건강하게 다스릴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 각자가 건강한 욕구를 조심스레 잘 가질 때, 타인에 대해서 사욕과 갈증을 갖지 않고 온전히 사랑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강석진 신부(한국순교복자성직수도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