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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화해·일치] 북한에도 시장경제가 있을까 / 윤완준

윤완준 (테오도로) 동아일보 베이징 특파원
입력일 2017-09-26 수정일 2017-09-26 발행일 2017-10-01 제 3064호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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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해관총서(세관) 통계(1~5월)에 따르면 이 기간 중국이 북한에 수출한 휴대전화는 5000만 달러어치로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104.5% 증가했다. 직물은 9300만 달러로 70.6% 늘었다. 텔레비전, 냉장고, 에어컨 같은 가전제품도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크게 증가했는데 냉장고는 증가율이 194.7%, 에어컨은 145%였다. 오토바이도 전년에 비해 수출액이 145% 증가했다. 승용차 역시 40.7% 늘었다.

식료품 쌀, 비료 수출도 크게 증가했다. 의식주가 해결된 뒤 수요가 생기는 상품들의 대북 수출 증가세가 뚜렷하고 북한이 소비재를 많이 수입하고 있다는 것은 북한 내부 경제가 어느 정도 작동하고 있다는 걸 보여준다. 북한이 연간 1∼2%의 경제성장률을 기록하고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전문가들은 북한 내부의 시장화에 주목하고 있다. 무역은 북한과 거래하는 상대국가가 있어 금방 수치가 나온다. 외부와 단절된 북한 내부에 시장화가 얼마나 확산되는지 측정하기란 매우 어렵다. 국내외 다양한 기관에서 북한 출신 주민들 조사 등을 통해 추산해보면 가계소득의 70~90% 정도가 비공식 부문, 즉 시장에서 나온다고 한다. 과거 소련에서 시장화 정도를 측정했을 때 이 수치가 약 20% 나왔다. 그에 비하면 사회주의 국가인 북한에서 유례없는 시장화가 진행되고 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중국의 전문가에 따르면 북한은 시장경제화 정도로만 보면 1990년대 중국의 개혁개방 초기와 비슷하다고 한다. 한 전문가는 2011~2013년 3년간 북한의 변화 속도는 그 전 10년 변화의 2배였고 2014~2015년 2년간 북한의 변화 속도는 그 전 3년 변화의 2배라고 평가했다.

시장은 사람의 생각을 바꾸고 사회 구조와 정치 질서를 변화시킬 수 있다. 민족의 화해와 통일을 위해서는 북한 주민이 시장에 익숙해지도록 도울 필요가 있다. 결국 함께 살아야 할 남북 주민들의 사고체계가 지나치게 다르면 통합에 걸림돌이 되기 때문이다.

북한에서 시장화가 진행되고 있다지만 북한 출신 주민 조사 등을 통해 시장에 대한 인식 정도를 물어보면 남한 주민들의 평균점수보다 훨씬 낮다고 한다. 북한에서 시장 활동을 해본 경험이 없는 이들은 이 점수가 훨씬 낮다. 북한 출신 주민 중 외교관 등 고위급 출신일수록 시장에 대한 이해도가 떨어지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에게 시장의 수요와 공급, 개방 경제라는 개념은 도저히 이해하기 어려울 것이다. 이렇게 남북 간 차이가 큰 상황에서는 갑자기 통일되는 게 더 큰 혼란을 낳을 수 있다. 실제로 북한 출신 주민들이 한국에서 생활하면서 남한 주민들에겐 너무나 당연한 시장경제를 이해하지 못할 때 차별받는다고 느끼는 경우가 많다.

북한 주민들에게 개방 경제의 이점을 이해시키기 위해서는 외부와 더 많이 접촉하게 해야 한다. 그런 면에서 북한이 외부와 완전히 고립된 현재 상황은 좋은 소식이 아니다.

윤완준 (테오도로) 동아일보 베이징 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