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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1일, 아기 예수의 성녀 데레사 대축일에 살펴본 영성

이주연 기자
입력일 2017-09-26 수정일 2017-09-26 발행일 2017-10-01 제 3064호 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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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한 일상에서 ‘거룩함’ 추구

“끝까지 작은 자이고 싶습니다.”

전 생애를 통해 자신을 ‘작은 자’ ‘하찮은 자’로 칭했던 ‘작은 꽃(소화·小花)’ 아기 예수의 성녀 데레사. 비오 10세 교황은 성녀를 ‘현대의 가장 위대한 성인’이라고 불렀다. 성인 반열에 올린 위대함은 무엇이었을까. 10월 1일 ‘아기 예수의 성녀 데레사 동정 학자(선교의 수호자) 대축일’을 맞아 성녀가 남긴 영성의 자취를 살펴본다.

1873년 프랑스 북서부 바스노르망디의 알랑송(Alencon)에서 태어난 성녀는 1888년 15세에 리지외의 가르멜수녀원에 입회, 9년간의 짧은 수도 생활 끝에 1897년 24세 나이로 삶을 마감했다. 수녀원 내에서조차 ‘특별하게 언급할 것 없는 그저 매우 친절했고 별로 눈에 띄지 않는 존재’였던 성녀. 그 생애가 조명되는 것은 무엇보다 지극히 평범하고 작은 일상에 충실하며 거룩함에로 향하는 삶을 살았다는데 있다.

가르멜수도회 성 요셉 한국관구에 따르면, 성녀는 영웅적인 고행 실천이나 특별한 수덕행위가 아니라 소소한 일상 속 일들을 사랑으로 행했다. 특별한 체험이 있었던 것도 아니고 다른 수녀들과 다른 삶을 살지도 않았다. 그저 주어진 일 안에서 매 순간 그리스도를 따르는 최선의 시간을 살았고 모든 것을 사랑으로 이해하고 실천하려 애썼다.

성녀의 영성은 ‘작은 길’로 요약된다. 잠언 9장 4절에서 영감을 받은 ‘작은 길’은 성녀의 고유한 영성이 됐다. 성녀는 천국에서의 자기 소명을 ‘장미꽃 비를 내리는 것’ ‘사람들에게 하느님을 사랑하게 하고, 작은 길을 영혼들에게 가르치는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영성신학자 박재만 신부(대전교구 원로사목자)는 ‘작은 길’에 대해 “작은 채로 남아 있으면서 자신의 보잘 것 없음을 인정하고 어린 아이가 아버지에게 모든 것을 맡기며 아무 걱정도 않듯이 모든 것을 선하신 주님께 맡기는 것을 의미한다”고 풀이한다. 박 신부는 “성녀가 ‘작은 길’을 통해 신비주의의 일상성을 실증해 줬다”고 평했다. 작은 길의 목표는 하느님과의 일치인 성성(완덕)이었고, 방법은 사랑이었다. 성녀는 하느님께 대한 사랑의 열망으로 고통과 어려움을 기쁘게 참아내며, 희생과 극기를 기꺼이 맡았다. “저는 아무리 작은 희생도 놓치고 싶지 않습니다”는 말처럼, 일상의 사소한 일들 안에서 희생의 순간을 찾았다.

아울러 ‘겸손’과 ‘단순성’, ‘신뢰심’ 속에서 작은 길의 기본적인 자세를 발견했다. 겸손할 이유에 대해 “전능하신 하느님께서 제게 주신 최대 은혜는 제가 작은 자이며, 모든 선에 대해 무력한 자라는 것을 알려주신 일입니다. 저는 예수님을 닮고 마땅히 제 안에 그분께서 머무르시도록 언제나 아주 작고 참으로 겸손한 사람으로 남아있고 싶어요”라고 말했다.

신뢰심에 대해서도 “이층에 간 어머니를 찾아 우는 애기처럼 행동하면 된다”는 비유를 들어 “하느님 자비에 맡기는 신뢰야말로 하느님께 가까이 가는 확실한 길”이라고 단언했다.

이러한 성녀의 모습은 ‘백색 순교’의 의미처럼 일상의 삶 안에서 하느님을 만나고 성화되기를 바라는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에게 귀감이 된다. 성녀는 또 선교사명을 자신의 사명으로 깊이 인식하고 모든 선교사들을 위한 기도와 희생을 소망했다. 또한 사제들의 성화와 죄인들의 회개를 위해 자신의 삶이 봉헌되기를 원했다. 비오 12세 교황은 1925년 그를 성인 반열에 올렸고, 1929년 성 프란치스코 하비에르와 함께 ‘선교사업의 수호자’로 선포했다.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은 1997년 성녀를 보편교회의 교회학자로 선포했다. 아빌라의 성녀 데레사, 성녀 카타리나에 이어 세 번째 여성 교회학자로 선언된 것은 그가 남긴 가르침과 메시지가 교회의 보편적 권위로 인정됐다는 의미다.

이주연 기자 miki@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