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마당

[독자마당] 십자가의 힘을 알려준 성지순례길

김이지훈(프란치스코·서울 자양동본당)
입력일 2017-09-19 수정일 2017-09-19 발행일 2017-09-24 제 3063호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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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보 알림마당에서 원죄 없으신 마리아교육선교수녀회에서 진행하는 청년도보성지순례 행사를 알게 되었다. 걷기운동을 좋아해서 평소에 도보성지 순례에 관심이 있었다. 지도만 들고 혼자 다니기에는 부담이 있었는데 수녀님들이 진행하는 프로그램이 있어서 반가운 마음으로 참석했다.

아침 9시30분 합정역 7번 출구에서 수녀님들과 참가자들이 모였다. 25명 정도나 되었다. 절두산성지로 이동해 각자 자기소개를 간단히 하고 수녀님의 설명을 들었다. 수녀님은 스스로 신앙을 찾아 받아들인 한국교회의 특별함을 강조했다.

1866년 병인박해 때 절두산에서는 수많은 천주교 신자들의 목이 잘렸다고 한다. 적절한 조사나 기록, 절차 없이 바로 처형을 하였기 때문에 이름을 남긴 순교자는 30명 정도뿐이라고 한다. 너무 많은 사람들의 목이 잘려서 산이름이 잠두봉에서 절두산으로 변했다. 순교자들의 붉은 피가 흐르던 절벽 위에 지금은 순교성당이 세워져 있다.

성당 미사에 참례한 후 성인 유해실에서 잠시 기도를 하고 순교자기념박물관에 들어갔다. 내가 좋아하는 안중근 의사의 ‘경천’ 유묵 사진이 있었다. 진짜 유묵은 바티칸전시를 위해 출장을 가 있었고 대신 사진이 있었다. 전시해설가가 설명을 보탰다. 일본에 있던 유묵을 어떤 스님이 구매했는데 그 스님이 보관하기 곤란해 경매시장에 내어놓은 것을 잠원동본당 신자들이 거금 6억 원을 모아 구매해서 기증한 것이라는 이야기였다.

다음으로 새남터성지에 도착해 순교자기념관에 들어갔다. 김대건 신부님과 신앙 선조들의 굳은 믿음과 박해 당한 삶이 슬프고도 아름답게 느껴졌다. 내가 그 시절 그 상황에 있었다면 믿음과 죽음을 선택할 수 있었을까. 새남터성지를 구경하고 당고개성지까지 다시 걸었다. 3시간 정도를 걸었더니 발이 아팠다. 4시쯤 당고개성지에 도착했다. 아파트에 둘러쌓인 모습이 조금 낯설어 보였지만 심순화 화백의 그림작품 등 볼거리가 많았다. 성지를 둘러보고 성지와 이어진 공원에서 참가자들과 이야기나눔을 했다.

도보순례를 시작할 때 수녀님한테서 받은 십자가의 길 카드를 통해 느낀 점과 오늘 순례에서 느낀 점을 돌아가면서 한 명씩 이야기했다. 나는 제14처 ‘예수 무덤에 묻히시다’ 카드를 받았는데 카드에는 독일 신부인 지거 쾨더의 그림이 있었다. 죽음을 의미하는 무덤그림이 있었고 관 속에는 돌아가신 예수님이 계셨다. 처음 카드를 보고 부담스러웠다. 하지만 뒷면에 적힌 글귀를 자세히 보니 십자가의 끝은 무덤(죽음)이 아니라 부활(영광)이라고 적혀있었다. 나는 성지에서 본 순교자들처럼 나도 십자가를 통해 부활할 수 있겠다는 희망을 느꼈다. 나는 내 차례에서 ‘부활’을 이야기했다.

프란치스코 교황님이 말씀하신 “십자가의 힘을 믿으십시오!”라는 말의 뜻이 평소에 궁금했는데 이번 성지순례를 통해 깨닫게 되었다. 십자가의 힘은 부활의 희망을 뜻하는 것이 아닐까?

김이지훈(프란치스코·서울 자양동본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