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한담

[일요한담] 유섬이 불씨를 살려내려고 / 황광지

황광지(가타리나·수필가)
입력일 2017-09-19 수정일 2017-09-19 발행일 2017-09-24 제 3063호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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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말하지만, 전주의 복자 유항검의 딸 섬이는 아홉 살에 거제도 관비로 유배되었다. 어린 나이라 죽음만은 면했다. 유배되어 관비의 신분이었지만 어린 나이라 양모 밑에서 바느질을 배우며 살 수 있었다. 열여섯 살 즈음에 양모에게 청하여 작은 봉창 하나에 밥과 용변기만 들여놓을 수 있는 흙돌집에 들어갔다. 봉쇄된 25년 동안 오직 기도와 삯바느질을 하며 흙돌집에서 지냈다. 흙돌집에서 나온 후에도 삶의 본보기가 되며, 1863년 일흔한 살에 생을 마감했다.

당시 거제부사를 지낸 하겸락이 「사헌유집」에 유섬이라는 불씨를 살려놓았다. 그 불씨가 용케 꺼지지 않았다. 그리고 2014년 하성래 교수가 연구논문을 통해 그 불씨를 세상에 끄집어냈다. 하느님의 섭리였다.

하겸락 부사가 유섬이의 죽음 앞에 제문을 지어 바치고 묘비에 ‘七十一世柳妻子之墓’(칠십일세유처녀지묘)라 적게 하였던 것. 거제 송곡마을에 있는 유섬이 묘소를 찾아냈다. 마산교구에서 유섬이를 살리기 위해 불씨를 불기 시작했다. 영원히 사라질 뻔했던 흔적.

나도 덩달아 그 일에 뛰어들어 불길이 일어나도록 용을 썼다. 지난해에는 강희근 시인이 「순교자의 딸 유섬이」 시극집을 집필했다. 이 생소한 유섬이를 신자들에게 알리는 특강도 여러 차례 진행했다. 올해도 유섬이 살리는 일은 계속되어 가을 공연을 앞두고 있다. 어린 유섬이를 통해서 하느님이 어떻게 섭리하시는지, 시공간을 초월한 이야기이다.

나는 양 치던 어린 다윗을 찾아내어 사무엘에게 기름을 부으라고 이르신 주님을 떠올렸다. 어린 섬이를 우리에게 느닷없이 보내 불길을 일으키게 하시는 뜻을 깊이 묵상해본다.

황광지(가타리나·수필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