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삼중우주론의 ‘물들’
히브리어로 물은 마임이다. 그런데 마임은 단수형으로는 전혀 쓰지 않고 오직 복수형으로만 쓰는 말이다.(plurale tantum) 그러므로 마임을 글자 그대로 직역하면 ‘물들’이다. 왜 ‘물’을 ‘물들’이라고 불렀을까? 그 배경에는 고대근동의 삼중 우주관이 있다.
고대근동 사람들은 우리 눈에 보이는 그대로 이 세상을 소박하게 이해했다. 신명기를 보면, 하느님이 십계명을 주시기 전에 “땅 위에 있는” 짐승도, “하늘을 날아다니는” 짐승도, “땅 아래 물속에 있는” 짐승의 모습으로도 우상을 만들지 말라고 하셨다.(신명 4,17-18) 이렇게 세 영역의 짐승을 거론한 것은 이 세상이 ‘하늘 - 땅위(궁창) - 지하’의 삼중으로 이루어져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하느님께서 세상을 이렇게 만드셨다고 믿었다. 천지를 창조하실 때 하느님은 “마임(물) 한가운데에 궁창이 생겨, 마임(물)과 마임(물) 사이를 갈라놓아라”(창세 1,6)고 명령하셨다. 그러므로 우리가 사는 세상은 거대한 ‘물들’ 사이에 존재하는 것이다. 고대 이스라엘인들은 저 하늘이 푸른 이유는 바다처럼 물이 가득 찼기 때문이라고 생각하였다.
성경을 지나치게 문자적으로만 믿어서, 마치 성경을 빅뱅이나 진화론 등 현대학문을 폄하하는 도구로 추락시키는 경우를 본다. 안타까운 일이다. 이른바 창조과학의 신봉자들은 저 하늘이 푸른 액체로 가득 찬 것이라는 고대 우주관도 신봉하는가. 무릇 성경의 가르침이란 한 글자씩 깊이 새겨 내 마음과 실천의 기준으로 삼아야 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