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성

[세상살이 신앙살이] (403) 욕설의 무게

강석진 신부(한국순교복자성직수도회)rn
입력일 2017-09-19 수정일 2017-09-19 발행일 2017-09-24 제 3063호 1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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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은 거의 매일, 점심식사를 마치면 수도원 주변을 산책합니다. 때로는 쉬는 날 형제들과 함께 수도원 근처에 있는 둘레길도 걷습니다. 젊은 형제들과 함께 길을 걸을 때가 있습니다. 그러면 서로가 대화를 나누던 중에 몰랐던 부분을 알게 되어 마음이 짠 - 해질 때도 있습니다. 어쩌면 누군가 함께 길을 걷는 묘미가 바로 이런 것이 아닐까 합니다.

며칠 전, 후배 수사님과 산행을 했습니다. 날씨도 좋고, 마음도 환해져서 행복한 걸음을 걷고 있는데, 어디선가 음악 소리가 점점 크게 들렸습니다. 짜증이 ‘확-’ 나서, 음악 소리가 크게 들리는 쪽을 향해 고개를 돌려보니, 자전거를 탄 이들이 우리가 걷는 길 옆, 도로를 따라 지나가는 것입니다. 그런데 어디에 설치했는지 몰라도, 자전거에서는 시끄러운 음악소리가 엄청 크게 들렸고, 그들은 아무렇지도 않는 듯, 자기네들끼리 쑥덕거리며 지나가는 것입니다.

‘욱-’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순간, 달려가서 그 사람들이 타고 있는 자전거의 뒷바퀴를 발로 ‘뻥-’ 차버리고 싶었습니다. 그것도 잠시뿐, 그들은 소음과 같은 큰 음악 소리를 울리며 점점 멀어지고 있었습니다. 그들이 지나간 자리, 다시 찾아온 고요한 시간. 그런데 아직까지 내 귓전에는 그들의 음악 소리가 크게 들리는 것입니다. 계속해서 치밀어 오르는 부정적인 감정! ‘씩- 씩-’ 그리고 나도 모르게, 정말 나도 모르게 마음속으로 욕이 튀어나왔습니다. ‘이런 나.쁜.×들. 천하에 예의가 없는 것들….’

계속해서 욕설을 하며 길을 걷다 보니 산행하면서 느끼는 즐거움은 어느 틈엔가 가라앉았고 야트막한 오르막길조차 힘겨웠습니다. 내리막길에선 체중이 앞으로 쏠렸는지 엄지발가락이 무척 아팠습니다.

길을 걸으며, 다시금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러다 보니, 내 머릿속에 분노와 짜증이 뒤섞인 욕설들이 가득 남아있음을 발견했습니다. 배낭의 짐이 아니라, 울퉁불퉁 길이 힘든 것이 아니라, 욕설의 무게가 나를 힘들게 했던 것입니다. 욕설의 무게에 눌려 내 마음과 생각뿐 아니라 감정마저 무겁게 눌리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욕설의 무게에 눌려있다 보니, 지금 내가 무엇을 하고 있으며, 누구와 함께 있는지조차 잊어버렸습니다. 부정적인 감정을 동반한 욕설은 나를 점점 더 깊은 부정적 사고의 깊은 구렁텅이로 끌고 갔던 것입니다.

다시금 긴 호흡을 천천히 하며, 마음을 가다듬었습니다. 그리고 뒤돌아보니, ‘아뿔싸!’ 내 뒤에는 땀을 흘리며, 나와 함께 걷고 있는 형제의 앳된 얼굴이 보였습니다. 그 후배 수사님은 내 마음을 다 아는 듯, 나를 보며 빙그레 웃어주었습니다. 그 형제의 얼굴을 보는 순간, 내 머릿속 모든 욕설이 사라졌습니다. 형제의 웃음으로, 욕설의 구렁텅이로 빠져들던 내 마음을 붙잡을 수 있었습니다.

좋은 경험했습니다. 욕설의 무게는 산행의 힘겨움보다 더 우리를 지치게 합니다. 욕설은 내가 욕을 하는 내용 그대로, 내가 그 욕설 그 자체가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감히 말씀드립니다. 힘들어도 나쁜 욕설은 마음속에 오래 담지 맙시다!

강석진 신부(한국순교복자성직수도회)r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