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영혼을 여는 문 '이콘'] 사막의 성 안토니오

장긍선 신부(서울대교구 이콘연구소 소장)rn국내 이콘 분야에서는 최고 전문가로 꼽힌다. 러
입력일 2017-09-19 수정일 2017-09-19 발행일 2017-09-24 제 3063호 1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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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안토니오.

동방교회와 서방교회 모두에서 수도자들과 은수자들의 아버지라 불리는 성 안토니오는 251년 코마 즉 오늘날 이집트 멤피스에서 태어났다.

그는 18세에 부모의 죽음을 맞고 은수자가 되기로 결심했다. 사막으로 들어간 안토니오 성인은 자신이 직접 만든 성물들을 팔아 그 수익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눠주며 20년간 수도생활을 했다.

사막에서 그는 많은 유혹으로 고통을 받았는데, 후에 알렉산드리아의 대주교 성 아타나시우스가 쓴 ‘성 안토니오의 생애’에서 그가 겪은 유혹의 일화들을 볼 수 있다. 악마는 갖가지 동물과 기괴한 형태로 명성, 부, 권력, 욕망을 유혹했지만 안토니오 성인은 겸손, 진정성, 형제적 자비의 무기로 악마를 이겨냈고 더욱 깊은 영적 완덕의 삶을 살았다.

이러한 소문이 사방에 퍼져 나가면서 수도생활에 뜻을 품은 많은 청년들과 이미 은수생활을 하던 이들이 계속 찾아와 그의 지도를 받기를 청했다. 안토니오 성인은 처음에는 특정한 규정이 아닌 엄격한 충고만을 줬는데, 그의 간단명료한 가르침은 훗날 사막의 교부들의 말씀집(Apophtegmata)으로 정리됐다. 그가 제시한 수도 규칙도 제자인 아모나스에 의해 완성됐고, 그가 살았던 은수자적 삶의 방식은 파코미우스 등과 여러 은수자들을 통해 그리스, 러시아 등으로 전해져 보다 체계적인 수도생활 방식으로 발전됐다.

성 안토니오는 자신의 은수처를 단 두 번 벗어났는데, 첫 번째는 311년 알렉산드리아에서 일어난 박해로 유죄 판결을 받은 죄수들을 돕기 위해서였다. 두 번째는 아리우스 이단과 싸우기 위해서였다. 그는 아리우스 이단에 맞서 싸우던 아타나시오 성인을 도와 교회의 정통 교리를 수호했다.

성 안토니오는 105살이 되던 해인 356년 피정 도중 사망했다. 그의 제자들은 비밀 장소에 장례를 치렀다. 그 후 561년 그의 유골이 발견돼 알렉산드리아에서 콘스탄티노플을 거쳐 프랑스 비안네 근처 수도원에 모셔졌다.

안토니오 성인을 묘사한 성화나 성상을 보면 T자 모양의 막대기를 들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성화에는 십자가, 돼지 그리고 수도생활 지침이 쓰인 책 등도 그려지곤 한다.

안토니오 성인은 자신에게 치유를 청하며 환자들이 몰려들자 그들을 돼지 지방으로 치료해 통증을 줄이는데 도움을 주었다고 한다. 그래서 안토니오 성인의 발치에 새끼돼지 한 마리를 묘사하는 전통이 생겨났다. 또 세월이 흐르면서 유럽 전역에서는 안토니오 성인을 돼지의 수호자이며 더 나아가 모든 동물들과 도살장의 수호자로까지 공경하며, 동물들의 보호를 위해 마구간 입구 또는 안쪽에 안토니오 성인의 형상을 걸어 놓기도 한다.

장긍선 신부(서울대교구 이콘연구소 소장)rn국내 이콘 분야에서는 최고 전문가로 꼽힌다. 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