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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알 하나] 가농 생명 공동체 운동과의 연(緣), 그리고 사회사목 비전 / 문병학 신부

문병학 신부 (평택대리구 세마본당 주임)
입력일 2017-09-19 수정일 2017-09-20 발행일 2017-09-24 제 3063호 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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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병학 신부.
첫 본당사제로 부임한 사강본당은 현 서신본당을 포함한 서신면과 송산면, 남양면 일부를 관할하는 교우 1200여 명의 전형적인 농어촌 본당이었습니다. 저는 첫 부임지에서 사목 활동 중에 몇 분의 가톨릭농민회원들이 유기농업을 실천하고 생명 공동체 운동을 전개한다는 흥미로운 사실을 알았습니다. 1980년대 말 당시엔 ‘유기농’이라는 말도 생소하고 ‘생명 공동체 운동’도 사회나 교회 안에서 그리 익숙한 용어가 아니었습니다.

본당 사목 활동 중 가톨릭농민회원들과 밀접히 연관된 사목 활동을 하면서 자연스레 가톨릭농민회 지도 신부가 됐습니다. 덕분에 보다 많은 농촌문제와 산업 및 공업사회에서의 생명과 환경문제, 심각한 먹거리 문제가 있음을 알게 됐습니다.

또 적지 않은 신앙인들이 창조 질서를 보존하는 노력 속에 생명의 가치를 수호하고 생활, 생명 공동체 운동을 통해 생명 사회를 이루고자 헌신하는 모습을 보면서 깊은 감동을 받기도 했습니다.

당시 전국 가톨릭농민회 지도 신부셨던 원주교구 김승오 신부님은 농촌 사목과 생명공동체 활동에 누구보다도 깊은 관심과 열정을 갖고 활동을 하셨습니다. 그분 주도로 몇 분 신부님과 수녀님, 평신도들이 모여 가톨릭 농민회 ‘생명 공동체 운동’ 세미나를 함께 준비하면서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1990년쯤 전국 가톨릭농민회원 20여 명과 함께한 일본 농민들과의 만남과 생명 공동체 연수도 시야와 안목을 넓게 해주고, 농업과 생명 그리고 공동체 의식을 갖게 해준 좋은 계기였던 것 같습니다.

이때 훗날 「공생공빈(共生共貧) 21세기를 사는 길」이라는 책을 쓴 츠치다 다카시 교수를 만났습니다. 그 분은 공과대학 교수직을 마다하고 해박한 이론으로 현대 문명을 비판하며 ‘쓰고 버리는 시대를 생각하는 모임’을 주도하시는 분이셨습니다.

“우리가 함께 살기 위해서는 더불어 가난해야 한다”는 대안적 사고는 절망의 시대에 종교나 민족의 차이를 넘어 인류 모두를 위한 희망의 메시지를 전하면서 사람들에게 깊은 울림을 주고 많은 이들의 사랑과 존경을 한 몸에 받는 분입니다.

그분의 강의와 대화에서 핵심은 “쓰고 버리는 이 시대를 깊이 생각해야 하며 미래에 공업사회는 우리를 배고프게 할 것이며 생명 농업을 만들어 가는 것이 우리의 살 길이며 희망이다”라는 것입니다. 가톨릭농민회원들이 공동체 운동을 해나가는데 이상적 공동체성과 현실적 경제성 사이의 한계를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하는 질문에 그는 ‘생명과 공동체를 위한 신바람 나는 세상’을 만들어 가면 경제성도 담보된다는 결론을 줬습니다.

오늘날 가톨릭농민회의 ‘우리 농촌 살리기 운동’도 이 공동체성과 경제성 사이에 많은 우여곡절과 난관이 있었음에도 사반세기 동안 생명 세상을 위한 공동체의 희망과 비전으로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이즈음 교회는 프란치스코 교황님의 ‘찬미받으소서’ 회칙에서 “인류 공동의 집에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습니까?”라는 인류 생존 위기의 심각성에 관한 물음을 던지며 그 실천과제를 찾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공생공빈 밀알 사회적 협동조합’과 ‘생명 기부 나눔 운동’은 쓰고 버리는 이 시대에서 생명공동체의 신바람 나는 세상을 위한 유효한 공동체성과 경제성의 대안적 시스템을 생각합니다. 우리의 희망과 비전이라는 믿음으로 함께 하고 있습니다.

문병학 신부 (평택대리구 세마본당 주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