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주의 창

[방주의 창] 공감하기와 차별 두기 / 송용민 신부

송용민 신부(주교회의 사무국장·인천가톨릭대학교 교수)
입력일 2017-09-12 수정일 2017-09-12 발행일 2017-09-17 제 3062호 23면
스크랩아이콘
인쇄아이콘
 
            
미국의 미래학자 제레미 리프킨은 그의 저서 「공감의 시대」에서 “인간은 근본적으로 공감하는 종(種)”이며, 인류가 경쟁과 배타성의 문명에서 공감 능력을 상실해온 역사를 반성해 사회적 교감 능력을 회복하고 분산적 협력과 네트워크로 결합된 공감 시대의 패러다임을 읽어내야 한다고 말한 바 있다.

‘공감’이란 말은 단순히 ‘연민’이나 ‘동정심’처럼 어떤 상황에서 한 사람의 마음과 기분을 ‘머리’로 이해하는데 그치지 않고, 상대방의 느낌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여 내가 기꺼이 다른 사람의 경험의 일부가 되어 그들의 경험에 대한 느낌을 공유하는 것을 뜻한다. 최근 공감이란 단어를 많이 쓰기 시작한 것은 인류가 지난 세기에 겪어온 배타적 투쟁과 이기적 욕망으로는 함께 살아가는 공존의 가치를 지키기 힘들어졌음을 깨닫고 있기 때문이다. 과거 전통적인 규율 사회가 이질적인 환경과 가치관들을 거부하는 ‘면역’체계가 체질화된 사회였다면, 현대 사회는 나와 다름을 ‘틀림’이나 ‘오류’로 배척하지 않고, 다양함으로 수용하려는 대화와 협력, 공감의 시대로 발전하고 있다는 것이 21세기 시대정신이기도 하다.

이러한 공감의 시대정신은 신앙 공동체인 교회에서 살아가는 신자들의 ‘신앙 감각’에도 깊은 영향을 미친다. 우리가 하느님을 찾는 여정은 서로 전혀 다른 환경과 처지에서 이루어지지만, 죄의식과 고통, 미움과 상처는 물론 죽음으로 내몰리는 세상의 ‘속됨’에서 참된 자유와 평화, 기쁨과 행복이라는 ‘거룩함’을 찾는 종교심은 누구에게나 다르지 않다. 단지 ‘감각’은 무엇인가를 지향하는 본능적인 능력이기 때문에, 내게 영적으로 유익한 것을 일상에서 습관적으로 반복적으로 지향하다 보면 그것이 제2의 본성처럼 ‘덕’이 되어 내가 어떤 중요한 것을 결정하거나 식별할 때 올바른 판단을 내릴 수 있게 해주는 직관이나 본능인 ‘신앙 감각’으로 자라나게 되는 것이다.

주변에서 성경 공부를 열심히 하고, 전례에 즐겁게 참여하며, 홀로 기도하는 습관을 가진 신자들은 대부분 그런 시간을 통해 얻는 기쁨의 감각이 일상에서 좋은 습관으로 자리를 잡은 경우이고, 본당의 궂은일도 마다하지 않고 기쁘게 봉사하며, 신자들과 함께 어울려 이웃 봉사에 열심한 교우들도 그런 봉사 행위가 내적 기쁨을 일으켜주는 감각으로 성장했기 때문이다. 열정적인 사제나 수도자들이라고 힘들고 지치지 말란 법은 없지만, 그럴 때마다 오랜 세월 하느님을 찾아 얻은 행복을 내면에서 일깨워주고 지탱해주시는 성령의 은사를 체험하고 있기에 신자들과 행복한 사제나 수도자로 살아갈 수 있는 것이라 생각한다. ‘행복은 전염된다’는 말처럼 내게 좋은 덕성은 타인과 깊은 신뢰 관계에 있을 때 상대방의 신앙 감각과 만나 옳고 그른 것을 식별해내는 ‘공동 본성’을 이루기 마련이다.

유감스럽게도 모든 신자들이 신앙 감각을 동일하게 표현하지는 않는다. 다른 사람들의 좋은 표양과 덕성, 그들이 교회 생활에서 보여주는 신앙 감각의 올바른 표현들과 공감하지 않는 사제나 수도자, 신자들은 공감보다는 그들과 차별을 두는 것을 선호하기도 한다. 나는 ‘그들과 달라’가 내 개성이고 관심이 되는 순간, 우월감이든 열등감이든 공동체 안에서 함께 나누는 기쁨은 사라지고, 불만과 불평이 일상화된다. 다름을 견뎌내는 것이 쉬운 세상이 아니기에 요즘 사회 일각에서 터지는 파열음이 끊이지 않고, 국제 관계에서조차 공존하기 위한 방식을 대화와 합의보다는 투쟁과 대립으로 끌어가는 현실을 마주하면서 우리가 여전히 악의 세력과 공존하는 하느님 나라를 향한 순례자임을 느끼게 된다.

교회는 성령께서 이끄시는 영적 공동체이지만, 여전히 사회 제도의 단면을 갖고 있다. 성령께서 이끄시는 각자의 신앙 감각을 공동체와 함께 올바르게 표현하고, 성장시키는 것은 개인의 몫이지만, 교회가 복음의 기쁨을 세상에 드러내는 표징이 되려면, 교회 스스로도 사회의 공감과 협력, 대화와 합의의 정신을 교회 안에서 체험하는 성숙한 제도를 만들어가는 교회의 신앙 감각을 필요로 한다. 그것은 프란치스코 교황님이 연일 강조하시는 성직자와 수도자, 신자들 모두가 하느님 백성으로 부름받아 복음을 증언하고,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는 ‘소통과 친교’의 공동체가 되어야 한다는 제2차 바티칸공의회 정신을 되살리는 길이 아닐까 싶다.

송용민 신부(주교회의 사무국장·인천가톨릭대학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