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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을 살리자 5. ‘자살, 살자로 바꾸려면’ (상)

주정아 기자
입력일 2017-09-05 수정일 2017-09-06 발행일 2017-09-10 제 3061호 1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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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방향이 보지 않아도… 선택은 결국 ‘삶’입니다
OECD 자살률 1위 ‘불명예’
80대 이상 연령층서도 늘어
경제생활·가정문제 주요 이유
감정적 감염 등 사회적 확산 우려
오늘날 자살 원인 다양해지면서
교회, 사목적 배려와 돌봄 펼쳐

OECD 가입국가 중 자살률 1위. 2003년 이후 계속 지고 있는 굴레다. 똑같은 소리라고, 지겹다고 토로하는 이들이 갈수록 늘고 있다. 반면 누가, 왜, 얼마나 스스로를 죽이고 있는지,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알고 실천하는 이들은 여전히 부족하다.

9월 10일은 ‘세계 자살 예방의 날’이다. 이에 앞서 관련 기관들을 비롯해 지역자치단체들은 각종 기념행사와 캠페인 등을 다양하게 마련하고 있다. 하지만 정작 일반대중들은 별 관심을 보이지 않는 행사들이 넘쳐나 아쉬움을 남긴다. 이번 ‘생명을 살리자’에서는 자살이 도대체 무엇인지 그 내·외적 의미를 짚어보고, 나와 내 이웃을 자살 위기에서 벗어나게 할 방안을 공유해본다.

■ 우리사회 자살 현주소

자살이 정말 심각한 문제일까. 먼저 우리사회의 실태를 짚어보자.

2015년 한 해 동안 1만3513명이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교통사고 사망자의 2.5배에 달하는 수다. 자살예방 활동을 펼치는 전문가들은 국가 통계에 포함되지 않은 자살자와 자살 사별자 수는 훨씬 더 많을 것으로 추정한다. 통계청에서 제공하는 사망원인통계 자료를 기반으로 1985년부터 2015년까지 자살률 추이를 비교한 결과 한국인의 자살률은 1992년부터 지속적으로 상승해왔다. IMF 외환위기였던 1998년과 글로벌 금융위기 직후인 2009년에는 남녀 자살률이 모두 급증했다.

특히 청소년과 중·장년층에 해당하는 15세 이상 64세 미만 연령층의 자살률은 1999년을 기점으로 2005년까지 급상승했다. 자살 사망자 숫자는 50대가 가장 많았다. 성별에 따라서는 남성이 70.7%, 여성이 29.3%의 비율을 보였다.

65세 이상 노인인구의 자살률도 2000년, 2015년을 기점으로 급격하게 높아졌다. 게다가 2015년 연령별 자살률에 따르면, 80대 이상 연령층이 가장 높은 자살률을 보였다. 현재 65세 이상 노인 자살률은 세계 최고 수준이다. 또 한국 전체 자살률은 OECD 전체 자살률 평균의 2.2배 수준이지만, 노인자살률은 OECD 평균 노인자살률의 3.2배다.

무엇보다 청소년의 인구 10만 명당 사망원인은 자살(7.2명)이 교통사고(4.0명)나 암(2.9명)에 앞선 1위로 나타났다. 전체적으로는, 자살이 암과 심장, 뇌혈관 질환, 폐렴에 이어 한국인 사망원인 5순위를 차지하고 있다.

2015년 경찰청 데이터에 따른 자살 동기를 살펴보면, ‘정신과적 질병문제’로 인한 자살이 전체의 31.5%로 가장 많았다. 뒤이어 ‘경제생활 문제’(23.0%), ‘육체적 질병문제’(21.6%), ‘가정문제’(9.6%) 순으로 나타났다. 2012년까지는 ‘육체적 질병문제’가 두 번째로 높게 나타났지만, 이후 ‘경제생활 문제’가 더 큰 자살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경제생활 문제’로 인한 자살사망자 비율은 2011년부터 5년간 계속 증가해왔다.

■ 누구를 위한 선택인가

세계보건기구(WHO)는 ‘고의적 자해’ 즉 자살은 ‘자살행위로 인해 죽음을 초래하는 경우로, 죽음의 의도와 동기를 인식하면서 자신에게 손상을 입히는 행위’라고 정의한다.

자살은 사람이 생명을 잃어 아무 것도 할 수 없게 하는 악한 행위다. 더구나 자살은 개인만의 문제에서 끝나거나 각자가 겪고 있는 문제를 해결해주지 않는다. 가족을 비롯한 주변 사람들에게 고통을 남기고, 남은 문제들은 사회적·국가적 위기로 이어진다. 감정적 감염이 커 다른 자살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으며, 또 다른 피해자인 자살 사별자들이 생겨나게 한다. 우리사회에서도 자살 사별자들이 해마다 8만여 명 이상 늘고 있다.

게다가 우리사회는 연령과 계층, 성별 등을 특별히 가리지 않은 불특정다수에게서 자살이 발생하고 있다는 문제점을 안고 있다. 경제적 문제와 스트레스로 인한 자살, 외로운 노인들의 자살이 급증할 뿐 아니라 초등학생까지 학업문제로 자살하는 사례가 생겨날 정도다.

우리사회에서는 삶과 죽음에 대한 가치관의 혼란이 더해지면서, 그 안에서 겪은 절망과 고통을 죽음으로 해결하려는 이들이 늘고 있다. 하지만 근본적으로 죽음에 관해 대화하고 솔직하게 논의하는 사회적 안전망, 자살 예방 인프라는 여전히 부족하다.

■ 교회의 가르침과 사목적 배려

가톨릭교회는 자신의 생명을 해치는 것을 살인과 같은 대죄로 규정하고, 엄격하게 금지해왔다. 초대 교부들은 자살은 물론 고의로 순교를 추구해 생명을 잃게 되는 행위까지 반대할 정도였다. 아우구스티누스 성인은 “죄악을 피하기 위해 혹은 자신이 지은 죄 때문에 자살을 해선 안 되며, 속죄의 과정을 거쳐야 한다”고 조언했다. 토마스 아퀴나스 성인도 자살을 정당화하기 위해 개인의 자유 등을 내세우는 것은 결코 허락될 수 없다고 강조했다. 전통적으로 교회는 자살자를 위한 장례미사와 기도조차도 금지해왔다.

자살이 비윤리적인 행동이며, 자살 시도와 권고 등도 벌을 받아야 하는 죄라는 사실은 변함이 없다. 하지만 현대사회 들어서 자살 원인이 다양하게 규명되면서, 교회는 인간의 나약성에 대해 이해의 폭을 넓혔다. 무조건 단죄하기보다, 사목적 배려를 제시하는 것이다. 구체적으로 자살을 정신질환 또는 사회적 문제로도 바라보고, 자살의 심리적 상황과 동기를 완전하게 파악하기 어렵다는 것을 인정한다.

이와 관련해 「가톨릭교회교리서」에서는 “중한 정신 장애나 시련, 고통 또는 고문으로 겪는 불안이나 심한 두려움은 자살자의 책임을 경감시킬 수 있다”(제2282항)고 밝혔다. 교회는 또한 1983년 개정한 새 교회법에 교회가 자살한 사람과 유족들을 위로해줄 수 있는 조항을 포함시켰다.

무엇보다 교회는 자살자와 자살 시도자, 자살 사별자들이 겪은 어려움을 이해하고, 그들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 사목적 배려와 돌봄을 적극 실천하고 있다.

주정아 기자 stella@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