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성

[세상살이 신앙살이] (401) 아재 개그

강석진 신부(한국순교복자성직수도회)rn
입력일 2017-09-05 수정일 2017-09-06 발행일 2017-09-10 제 3061호 1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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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로 선교를 떠났던 L형제가 며칠 전 휴가 차 한국에 왔습니다. L형제가 다시 선교지로 떠나기 전날, 본원 공동체 형제들은 함께 저녁식사 겸 회식을 했습니다. 회식을 하는 동안, 함께 사는 형제들 중 L형제와 동창인 형제들은, 과거 자신들이 살아온 이야기를 나누면서 화기애매(?)한 시간을 가졌습니다. 그 중에 한 형제가 L형제에게 물었습니다.

“수사님은 그곳에서 신자들과 어떻게 지내세요? 그 나라말은 잘 하시는데….”

이 말은 L형제가 평소 워낙 차분하고 진지한 태도를 보이고 말수조차 적을뿐 아니라, 결정적으로 유머 감각도 없다는 것을 의미했습니다. 그러자 L 형제는,

“그 나라 신자들과 정말 잘 지내요. 사실 예전에는 내가 말이 참 없었는데, 그 나라에 가서 그 나라 언어를 배우다 보니, 그곳 신자들과 많은 말을 하게 되더라고요. 그 나라 사람들과 가장 가깝게 지내는 방법은 재미있는 이야기, 즉 유머를 나누는 것이었어요. 그렇게 살다 보니 말뿐 아니라 유머 감각도 많이 늘었어요.”

그러자 다른 형제가 끼어들며,

“그럼 우리에게도 재미있는 이야기 좀 해 봐요.”

이에 L 형제는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말했습니다.

“수사님들, 혹시 세종대왕이 다닌 고등학교가 어딘지 아세요?”

한순간 조용, 고요해졌습니다. 세종대왕이 무슨 고등학교를! 다들 모르겠다는 눈치를 보이자 L형제는,

“에이 수사님들. 그것도 모르고. ‘가갸거겨 고교’ 출신이에요”

잠시의 침묵이 흐른 다음, 형제들 모두가 깔깔거리며 웃었습니다. 일명 ‘아재 개그’를 한 것이었습니다. 이어서, L형제는 또다시 질문을 했습니다.

“수사님들, 사자들 중에 이 세상에서 가장 착한 사자는 무슨 사자일까요?”

밥 먹다 말고, 또다시 조용, 고요해졌습니다. 회심의 미소를 짓던 L형제가 대답했습니다.

“자원봉사자!”

그러자 또다시 형제들은 까르르 웃었습니다.

“푸하하하, 세상에서 가장 착한 사자가… 자원봉·사·자래. 하하하”

사실 이 글을 읽은 분들은 역시, 무척 ‘썰렁’하다는 표정을 지으실지 모릅니다. 하지만 함께 식사를 하는 젊은 형제들, 특히 그 형제와 양성교육을 같이 받았던 동창 형제들은 그야말로 박장대소하며 웃었습니다. 내용이 웃겨서가 아니라, 전혀 그러지 않을 것 같은 형제가 무척이나 진지하게 차분한 목소리로 ‘아재 개그’를 했기 때문입니다. 무엇보다 웃음을 나누려고 노력하는 L형제의 모습을 보고 동료 형제들은 더 크게 웃었습니다. 선교지에서 선교사로서 열심히 살고자 노력하는 형제의 뜻을 잘 아는 동료 형제들은, 또다시 선교지로 떠나는 형제를 위해 함박웃음으로 그 형제의 삶을 격려해 주었던 것입니다. 참으로 좋은 시간이었습니다.

함박웃음을 나누는 형제들의 모습을 보면서 나도 행복한 시간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아무리 썰렁한 이야기라도 함께 웃을 준비가 되어있다면, 바로 그 순간 마음도 삶도 그렇게 나누어지는 것 같았습니다.

강석진 신부(한국순교복자성직수도회)r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