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태/환경

[특별기고] ‘수많은 생명이 땅에 묻혔습니다- 살충제 계란 파동을 지켜보며’ / 임상교 신부

임상교 신부 (대전 갈마동본당 주임·대전교구 생태환경위원장)rn
입력일 2017-09-05 수정일 2017-09-05 발행일 2017-09-10 제 3061호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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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먹는 먹거리가 바로 ‘생명’입니다 
창조된 존재 안에는 하느님 내재 먹는 과정 통해 닮아가게 돼
모든 것이 ‘자원’ 되는 시대에 생명조차 돈벌이 도구로 전락 존중 사라지고 효율성만 강조
모든 생명은 평등하고 존엄 ‘생명의 자원화’ 바로 잡아야

최근의 ‘살충제 계란 파동’은 먹거리에 대한 반성과 함께 생태적 시각에서 우리가 사는 세상을 다시 한 번 바라보고 묵상하는 계기를 만들었다.

생명이 자원으로 변질된 사회에서 그리스도인들은 어떤 생태적 삶을 추구해야 하고, 실천해 나아가야 할까.

대전교구 생태환경위원회 위원장 임상교 신부의 특별기고문을 통해 생명의 자원화, 먹거리 문제 등을 함께 고민해 본다.

전후 미국에서 개발된 공장식 양계방식이 전 세계로 확산된 덕에 닭은 지구촌 대표 먹거리로 자리 잡았다. 매년 500억 마리가 넘는 닭이 식탁에 오른다. 닭을 비롯한 가축이 놓인 끔찍한 사육환경이 오늘날 대재앙의 진앙이다. ‘살충제 계란 파동’은 먹거리에 대한 반성과 함께 생태적 시각에서 우리가 사는 세상을 다시 한 번 바라보고 묵상하는 계기를 만들었다.

수많은 생명이 땅에 묻혔습니다. 하느님이 주신 생명의 주기를 마치지 못한 채, 한 공간에서 살던 누군가가 병들었다는 이유로 그 안에 살던 모든 생명의 몸에 흙을 덮었습니다. 20년 이상 살 수 있도록 부여받은 생명입니다. 그러나 어느 누구도 하느님께서 주신 그 시간을 존중하지 않습니다. 왜 그렇게 어린 것을 좋아하는지 모릅니다. 성장하지 않은 상태, 성장을 위해 출발선에 서있는 생명의 생존권을 빼앗습니다. ‘쩝쩝’과 ‘크~억’을 반복하며 이쑤시개를 물고 나오는 사람들. 영양이 부족해 보이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내가 먹은 먹거리는 생명입니다. 우리는 고백합니다.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생명은 하느님으로부터 시작되었다.”

하느님으로부터 시작된 생명은 하느님을 담고 있습니다. 모든 창조된 존재 안에는 하느님께서 내재하십니다. 그래서 모든 존재는 생명을 먹음으로써 하느님을 먹습니다. 하느님을 먹으면서 하느님을 닮아갑니다. 내가 먹는 것이 곧 내가 되듯이 하느님을 먹는 나는 하느님처럼 변화되어 갑니다.

언제부터인가 사람들은 생명을 먹지 않게 되었습니다. 그 대신 ‘자원’이라고 부르는 것을 먹기 시작했습니다. 그들에게 생명이라고 지칭할 수 있는 대상은 없어 보입니다. 존재하는 모든 것–풀, 나무, 꽃, 고래, 참치, 고등어, 닭, 개, 소 등-그리고 이제는 하느님 모상으로 창조된 사람까지도 ‘자원’이라고 부릅니다. 자원은 언제든 소비되고 폐기할 수 있는 대상이라는 뜻입니다.

생명으로 존재할 수 있는 범위가 줄어들고 있습니다. 내가 서있는 사다리의 높이에서 자신보다 낮은 위치의 사다리에 서있는 존재들은 생명이라고 정의되지 않습니다. 자신의 풍요를 확대하기 위해서 사용가능한 자원일 뿐입니다. ‘자원으로 규정되는 타인’ 그리고 ‘자원이 되어 가는 나’의 모습이 존재하는 구조 속에서, 나와 너는 서로의 필요에 의해 폐기하고 폐기당합니다.

생명이 아닙니다. 그래서 손바닥 크기의 케이지에 생명을 밀어 넣고 잠 잘 시간도 주지 않고 밤낮으로 알을 낳게 강제합니다. 생명이 아닙니다. 좁은 우리에 갇혀 1년 내내 새끼만 낳아야 합니다. 생명이 아닙니다. 그래서 젖을 먹지 못하게 새끼를 어미 앞에서 죽이거나 다른 우리로 내보내고, 어미는 젖을 짜는 기계에 가두어 버립니다. 생명이 아닙니다. 산채로 가죽을 벗기고, 그 가죽으로 가방과 핸드백을 만듭니다. 그저 자원입니다. 돈을 버는 수단이고 도구입니다. 생명이 아닙니다. 더 많은 돈을 축적하기 위해 노동시간은 최대한으로, 임금은 최소한으로 주면서 심지어 폭행까지 합니다. 생명이 자원으로 변질된 사회에서 생명은 일부 사람들만이 누리는 특권이 됩니다.

무엇인가 정상적이지 않습니다. 정상적이지 않은 눈으로 다시 현실을 바라보니 이전에 보지 못하던 다른 것이 보입니다. 정상적이지 않아야 살아갈 수 있는 사람들. 그런데 그 숫자가 점점 많아지고 청년에서 노인까지 범위가 너무 넓어지고 있습니다. 이들에게 계란은 자판기 커피값보다 싸야만 합니다. 식탁 위에 김치를 올려놓기 위해서 더 싸고 저렴한 가격표를 찾아 발품을 팔아야 합니다. 성장호르몬과 항생제가 투여된 육고기로 단백질을 보충해야 합니다. 지금의 생존을 위해 내일의 생존을 유보해야 하는 사람들에게 지금의 비정상은 받아들여야 하는 현실입니다.

생명과 자원을 나누는 기준은 맘몬의 크기입니다. 소유한 맘몬의 크기에 의해 생명과 자원으로 구별됩니다. 그래서 맘몬의 획득을 위한 투지와 분투로 하루를 시작하고 마칩니다.

돈의 힘을 체험하고 있습니다. 맘몬이 권력이 되어 삶의 질을 결정하는 세상이 되었습니다. 창조의 아름다움 속에서 “좋구나”라는 감탄을 노래하며 회복을 위한 머무름이 불가능한 시대가 되었습니다.

‘살충제 계란 파동’이라고 표현합니다. 이 표현이 맞는 것인지 의문이 듭니다. ‘파동’이 아니라 마주하는 ‘일상’입니다. 맘몬중심의 사회, 자원화된 사회에서 돈의 축적을 위한 쉬운 수단은 먹거리이고, 생명의 자원화의 결과는 도구로 전락한 생명의 추락입니다.

어떤 것을 먹고 있는가 질문하기 이전에, 왜 그렇게 먹어야만 하는가에 대한 질문을 해야 합니다. 산다는 것은 먹는다는 것을 전제합니다. 그래서 어떻게 사느냐는 무엇을 먹느냐에 의해서 결정됩니다. 생명은 생명을 먹어야 ‘제대로, 답게’ 살 수 있습니다. 내가 먹는 것은 자원이 아니라 고유한 생명이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감사’는 나의 생명을 위해서 자신의 생명을 먹거리로 기꺼이 내어주는 생명에 대한 절실한 고개숙임입니다.

‘은혜로이 내려주신 이 음식(생명)’이 나를 살리는 바닥입니다. 하느님 창조의 살림 안에서 소품은 없습니다. 하느님 창조의 지속과 완성, 나와 너를 살리는 주인공들입니다.

임상교 신부 (대전 갈마동본당 주임·대전교구 생태환경위원장)r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