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성

[사회교리 아카데미] 미사를 드리러 광화문 세월호 광장에 갑니다

상지종 신부(의정부교구 정의평화위원장)rn1999년 사제품을 받았으며, 의정부교구 파주 교
입력일 2017-09-05 수정일 2017-09-05 발행일 2017-09-10 제 3061호 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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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받는 이들의 손을 잡다
■ 광화문 세월호 광장

서울 도심 한복판 제 각각 뽐내는 커다란 건물들 사이에 시원스레 정갈하게 단장한 ‘광화문 광장’이 있습니다. 모든 이들이 자유롭게 드나들고 함께 모여 맘껏 즐길 수 있기에 말 그대로 ‘너른 마당’입니다. 빌딩 숲 쏟아내는 휘황찬란한 불빛으로 오히려 어두움 깊게 드리워진, 양쪽 도로를 질주하는 차량 소음으로 오히려 깊이 숨죽여 있는 ‘세월호 광장’이 있습니다. 군데군데 두른 경찰 차벽으로 모든 이 품는 광장이라기보다는 오히려 하나의 ‘외로운 섬’입니다. 2014년 4월 16일, 있을 수도 없고 있어서도 안 되는 인간의 탐욕이 빚은 참혹한 사건 이후에, 대한민국 수도 서울의 상징인 광화문 광장은 이 시대 가장 고통스런 사람들을 품는 세월호 광장이 되었습니다.

광화문 세월호 광장! 철저한 진상규명과 안전사회 건설을 이루려 사랑하는 이들을 가슴에 묻은 세월호 가족들이 모였습니다. 억울한 희생자들의 넋들을 위로하려고 선한 이들이 멀리에서도 찾아 왔습니다. 평생 씻지 못할 가족들의 피눈물을 닦아 주고자 따뜻한 이들이 한걸음에 달려왔습니다. 해고노동자, 철거민, 농민, 삼척과 밀양, 멀리 제주 강정에서 힘겨운 삶을 힘차게 이어가고 있는 착한 이웃들까지 지금 가장 고통받는 이들과 기꺼이 함께하였습니다. 그리하여 ‘광화문 세월호 광장’은 사람답게 살고 싶은 사람들이 넘쳐나는 ‘너른 마당’이었습니다.

시간이 흘렀습니다. ‘너른 마당’이 점점 ‘외로운 섬’이 되어갑니다. ‘너른 마당’을 가득 채웠던 거룩한 분노의 함성은 흐릿해지지만, ‘외로운 섬’을 떠날 수 없는 벗들의 더욱 처절하고 절실한 정의와 진실의 음성을 듣습니다. ‘너른 마당’을 아름답게 수놓았던 고마웠던 많은 벗들이 시간의 흐름 속에 각자의 삶의 자리로 돌아가지만, ‘외로운 섬’을 애써 찾는 착한 벗들이 끊이지 않는 연대의 발걸음에 자그마한 힘을 더합니다.

■ 그곳에 미사를 드리러 갑니다, 이웃이 되어 주려고

매주 월요일 저녁에 광화문 세월호 광장에 갑니다. 3년이 넘어도 여전히 세월호를 품에 안고 있는 착한 벗들과 함께, 희생자들의 넋들을 기리고 가족들을 위로하며 힘겹게 살아가는 고운 이웃들을 기억하는 미사를 봉헌하기 위해서입니다. 강도를 만난 사람에게 이웃이 되어 주라는 예수님의 말씀을 따르기 위해서입니다.

율법 교사가 예수님께 묻습니다. “누가 저의 이웃입니까?”(루카 10,29) 그러자 예수님께서 착한 사마리아 사람의 비유를 말씀하신 후에 율법 교사에서 되물으십니다.

“누가 강도를 만난 사람에게 이웃이 되어 주었다고 생각하느냐?”(루카 10,36) “강도를 만난 사람의 이웃은 누구였느냐?”라고 묻지 않으시고 말입니다. ‘이웃은 네 물음의 대상이 아니란다. 그러니 먼저 너를 간절히 원하는 누군가에게 다가가 이웃이 되어 주어라. 누군가에게 이웃이 되어줄 때에, 비로소 이웃이 누구인지 알게 될 테니까’라는 뜻이 아닐까요. “누가 이웃인가?”라는 물음에서 이웃이 ‘관념적이고 추상적인 대상’이라면, “누가 이웃이 되어 주었는가?”라는 물음에서 이웃은 ‘내가 다가섬으로써 관계를 맺게 되는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대상’입니다. 그러기에 ‘이웃이 누구인지를 아는 것’이 아니라 ‘누구에게 다가섬으로써 이웃이 되어주는 것’이 우선입니다.

억압받는 이들, 상처받은 이들, 가난한 이들과 함께 하는 미사를 봉헌하러 광장으로, 길거리로 나갑니다. 감사의 인사와 격려를 받기도 하지만, 때로는 모욕적인 싸늘한 시선과 견디기 힘든 비난의 화살을 온 마음으로 맞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길 위의 미사를 드리러 나갑니다. 그리스도인으로서, 사제로서 강도를 만난 사람에게 이웃이 되어주는 것이기에. 그리고 사랑하는 믿음의 벗님들을 길 위의 미사에 초대합니다.

상지종 신부(의정부교구 정의평화위원장)rn1999년 사제품을 받았으며, 의정부교구 파주 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