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한담

[일요한담] 전화위복이 된 영화 ‘플립’ / 황광지

황광지 (가타리나) 수필가
입력일 2017-09-05 수정일 2017-09-05 발행일 2017-09-10 제 3061호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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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일 도서관 휴관도 잊고 차를 달렸다가 로비에서 휴관가름막을 보고야 이마를 쳤다. 어쩌지 하다가 건너편 영화관으로 갔다.

조조 상영 ‘플립’을 찾았다. 얼마 전에 보려다가 미뤘던 영화. 이미 내렸을 줄 알았는데 상영관을 아직도 차지하고 있는 것이 마냥 신기했다.

90분의 맑고 투명한 아름다움이 있는 명화였다. 장황함이 없고 간결하며, 무더움이 없는 신록이었다. 출연하는 사람도, 플라타너스 나무도 나를 뭉클하면서 울컥하게 했다. 주인공들의 말은 자주 받아 적고 싶은 시가 되어 흘러나왔다. 줄리 아빠 리차드나 이웃 할아버지 쳇도 ‘인간’과 ‘관계’를 훌륭하게 이끄는 장인이었고 시인이었다. 쳇 할아버지가 말했다. “밋밋한 사람도 있고 반짝이는 사람도 있고 빛나는 사람도 있지. 하지만 가끔은 오색찬란한 사람을 만나. 그럴 땐 어떤 것과도 비교 못 해.”

‘플립’에는 사람에 있어 중요한 가치가 무엇인지, 내가 믿는 가치를 지키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찾아가는 이야기가 있었다. 사람의 겉모습보다 내면을 알아보는 법을 어떻게 배우는지를 풀어내었다. 줄리 아빠 리차드는 “항상 전체 풍경을 봐야 한단다. 그림들은 단지 부분들이 합쳐진 게 아니란다. 소는 그냥 소이고 초원은 그냥 풀과 꽃이고 나무를 가로지르는 태양은 그냥 한 줌의 빛이지만 그걸 모두 한 번에 같이 모은다면 마법이 벌어진단다.”

소년·소녀가 멋진 청소년으로 성장하는 이야기 속에 어른들의 사유와 성찰이 들어 있었다. ‘flip’은 ‘뒤집다’는 뜻도 있다. 나는 도서관 대신 ‘플립’으로 오후 내내 상큼했다.

황광지 (가타리나) 수필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