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마당

[밀알 하나] "Nobis Cum"- 우리와 함께

노성호 신부 (용인대리구 양평본당 주임)
입력일 2017-09-05 수정일 2017-09-06 발행일 2017-09-10 제 3061호 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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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염없는 끄덕임, 초점 없는 눈동자, 말끝마다 연신 외쳐대는 ‘감사합니다!’와 ‘아멘!’, 이유를 알 수 없는 눈물과 울음, 제대로 그 뜻을 알아듣지 못할 웅얼거림, 점점 빛과 온기를 잃어가는 숯덩이를 마주하고 있는 느낌들, 언제 깨어날지 모르는 깊은 잠…. 다른 지역보다 유난히 요양시설이나 재활병원이 많은 곳에서 사목하고 있는 제가 그곳에 계신 분들을 만날 때마다 마주하는 모습들입니다.

몸만 성인이지 이미 마음과 정신은 다시 영아의 수준으로 돌아가고만 이들, 누군가 도와주지 않으면 한 발자국도 내딛을 수 없을 뿐더러 한 모금의 물조차 마음껏 삼킬 수 없는 가련한 이들, 한 번의 뒤척임도 없이 고요하고 잠잠하게 천장만을 응시하고 있는 이들.

이 모든 광경들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언젠가 내게도 이런 시간들과 모습들이 찾아오겠지?’하는 생각을 아니할 수 없게 됩니다. 지금은 젊고, 건강하고, 홀로 뭐든지 할 수 있고, 가진 것도 많은 듯 하고, 곁에 사람들도 많아서 외롭지 않은 것 같지만, 언젠가는 나도 이들처럼 초라해지고 약해지고 아프게 될 것이며, 누군가가 도와주지 않으면 안 될 상황에 놓이게 될 수 있겠지요.

그래서 자꾸만 되돌아보게 됩니다. 회개하게 됩니다. 이대로 살아가도 좋은 것인지, 지금 나는 잘 살고 있는 것인지, 매번 좋은 기회를 선사해주시는 하느님을 외면하면서 계속 그 좋은 기회들을 놓치면서 살아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

입장을 바꿔 놓고 바라보거나 생각해 봤을 때 나의 일이 되지 않는 것들은 없는 것 같아요. 그런 비참한 결과나 딱한 처지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 자는 아무도 없을 테니까요. 다만 지금 이 시간 나의 처지가 그러하지 않으므로, 그것은 남의 일, 나와는 무관한 일이라는 착각을 하고 있을 뿐이겠지요. 사실 따지고 보면 모두가 나의 일이고, 우리의 일이 되는 것인데 말입니다. 결국 얼마나 큰 연대의식을 가지고 공존과 상생을 추구하며 살아가느냐가 중요한 것 같아요. 누군가의 아픔과 눈물은 결코 그들만의 것이 아니라는, 그리고 그들만의 것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을 가끔은 마음에 품고 지낼 필요가 있지 않나 싶어요.

그래서 저는 동생 신부님과 함께 노래를 만들어 그 노래들을 전하면서 지내야겠다는 결심을 하게 됐어요. 저희 형제 신부가 함께 사랑했던 어느 멋진 녀석을 잊지 않기 위해, 꽃이 피기도 전에 꺾여버린 꽃봉오리 같은 아이들을 기억하기 위해, 그리고 어떻게 해서든 살아가야만 하는 남겨진 이들에게 “낮에는 구름 기둥 속에서 길을 인도하시고, 밤에는 불기둥 속에서 비추어 주신”(탈출 13,21) 하느님의 따스한 손길을 전하기 위해 노래를 부르기로 했답니다.

하느님과 우리는, 그리고 그들과 우리는 서로 연결되어 있으니 저희의 노래가 그들에게도 들리고, 저희의 기도가 그들이 있는 곳에도 닿지 않을까 싶어요. 그래서 저희는 팀 이름과 음반 제목도 ‘Nobis Cum’(우리와 함께)이라고 지었답니다.

언제나 우리와 함께, 우리 곁에 계시는 참 좋으신 하느님처럼 저도, 동생 신부님도 그렇게 많은 교우들과 함께, 특히 수많은 어려움으로 힘겨워하며 남몰래 한숨짓고, 속으로 눈물을 삼키고 있는 우리네 이웃들과 함께 지내고 싶은 진실한 마음을 온전히 담았습니다. 그래서 저는 오늘도 노래합니다. 그리고 그들과 함께 하러 그들 속으로 들어갑니다. 그들도 저와 함께 해 준다면 금상첨화일 텐데요.

그동안 저의 글을 기쁜 마음으로 읽어주신 모든 분들께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노성호 신부 (용인대리구 양평본당 주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