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성

[세상살이 신앙살이] (400) 사제의 유머는 치유의 힘 (하)

강석진 신부(한국순교복자성직수도회)
입력일 2017-08-29 수정일 2017-08-29 발행일 2017-09-03 제 3060호 1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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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생처럼 아끼는 부부와 함께 나는 그 자매님 댁에서 속칭 ‘아재 개그’를 온 몸과 온 마음으로 했고, 그 자매님은 깔깔거리며 웃었습니다. 이어서 마무리로 ‘가정을 위한 기도’를 바친 후 그 집에서 나왔습니다. 그 자매님은 “오늘, 너무나 웃어 행복했다”고 말하면서 얼굴근육을 손으로 풀면서 마을 입구까지 우리를 배웅해 주었습니다. 자매님과 헤어진 후 동생 부부가 눈물을 글썽이며 놀라운 사실을 내게 말해주었습니다. 그 자매님은 내일을 기약할 수 없는 중병을 앓고 있었고, 기도에 자신을 맡기며 하루가 마지막 투병의 날인 것처럼 지내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아, 그랬구나. 그러면 진즉에 나에게 말을 해 주지 그랬어?”

“그러고 싶었지만, 자연스럽게 그 언니와 신부님을 만나게 해 드리고 싶었어요. (흑흑) 정말 너무 좋은 언니인데. 그리고 그 언니는 자신의 병에 대해서 너무나 태연하게 받아들이고 있어요. 그게 신앙의 힘인 것 같아요.”

“그랬구나. 나는 그것도 모르고 그냥 떠들었으니, 나도 참 철없다.”

“아니에요. 오늘 언니가 정말 행복해했어요. 사실 그 언니는 기도의 힘으로 버티고 있어요. 그런데 오늘 신부님이 오셔서 무거운 이야기, 신학적인 이야기, 뭐 그런 이야기를 했다면 분위기는 힘들었을 거예요. 하지만 신부님이 재미있는 이야기를 해 주셨고, 그때마다 언니는 행복하게 웃으며 즐거워하고, (흑흑)… 신부님, 그저 감사합니다.”

그 자매님은 삶과 죽음을 초연하게 받아들이며, 자신의 모든 인간관계를 정리하면서 하느님을 만날 준비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랬기에 그런 분 앞에서 처음 만나는 사제가 들려주는 심오한 이야기는 부담이 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나 역시 그날 아침, ‘묵주 기도’의 힘이었는지, 그 자매님 집에 들어가는 순간부터 나올 때까지 좌충우돌하고 어리바리한 내 삶의 이야기를 편안하게 나눴습니다. 특히 그 자매님은 사제가 겪는 인간적인 모습에 더 즐겁고 행복하게 웃었던 것입니다.

문득 사제의 모습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됩니다. 사제 생활을 몇 년 하지 않는 내가 감히 사제의 삶을 정의 내리는 것이 거만할 수 있습니다. 그래도 사제의 모습은 자신 스스로에는 철저하고 엄격하면서도 이웃에게 따스함을 나누는 삶이 아닐까, 사제는 혼자 있는 시간을 고독으로 즐기면서, 아파하거나 힘들거나 혹은 고통 중에 있는 이들을 위해서는 헌신적인 마음으로 기쁨과 즐거움을 느낄 수 있도록 편안함을 이끌 수 있는 삶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사제의 삶이란 기도와 전례에서만큼은 한 치의 양보 없이 살면서, 타인이 지금 현재 무엇을 필요로 하는지를 알고, 그것에 대한 욕구를 잘 돌보면서 더불어 행복함을 느낄 수 있도록 손을 내미는 삶이라 성찰해 봅니다.

그리고 머리로는 잘 알지만, 그것을 마음에 담아 삶으로 실천하기는 어려운 것 - 이 또한 사제의 삶입니다. 그렇지만 사제로 살면서 ‘결국은 사람이 사람에게 가장 소중하다’는 것을 확실히 깨닫고, 이를 마음속으로 확신하면서 이 세상을 살아간다면, 결국은 하느님께서는 그 사제가 만나는 크고 작은 세상의 모든 만남을 은총으로 축복해 주심을 온전히 믿는 삶입니다. 이것을 정녕 확신하며 살아가는 삶이 사제의 삶인 것입니다.

강석진 신부(한국순교복자성직수도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