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마당

[민족·화해·일치] 이산가족과 북녘본당 / 윤완준

윤완준 (테오도로) 동아일보 베이징 특파원
입력일 2017-08-29 수정일 2017-08-29 발행일 2017-09-03 제 3060호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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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칼럼에서 필자가 2015년 분단 70년을 맞아 취재했던 ‘통일은 치유다’ 기획 시리즈를 소개했다. 2010년 천안함 사건으로 아들을 잃은 아버지들(1회)과 2008년 금강산 피격 사건으로 어머니를 잃은 젊은이(2회)는 분단으로 입은 상처를 조금씩 치유해가고 있었다.

언급하지 않은 3회는 시간을 더 거슬러 올라갔다. 6·25전쟁이 만든 상처를 가슴 저 깊은 곳에 동여맨 채 힘겹게 살아온 이산가족 문제를 조명하고 싶었다. 그래서 만났던 이병웅 전 남북적십자회담 수석대표는 그 자신이 흥남철수의 주인공인 이산가족이다. 1971년부터 33년 뒤인 2004년 퇴직할 때까지 남북 이산가족 회담에 참여한 산증인이지만 일선에서 물러나기 전까진 이산가족이라는 얘기를 일절 하지 않았다.

그 역시 북한에 있는 어머니와 누나를 끝내 만나지 못했다. 그가 제일 안타깝고 서글픈 게 무엇인지 아느냐고 필자에게 물었다. “사랑하던 어머니 얼굴을 잊어버렸다”는 것이었다.

대통령이 8월 15일 광복절 경축사에서 이산가족 상봉과 고향방문, 성묘를 다시 북한에 제의했다. 쉽지 않겠지만 만약 기회가 온다면 10월 추석 전후가 될 것이다. 적지 않은 이산가족들을 만나며 필자가 내린 결론은 이들만큼은 어떤 남북 간 갈등에도 후회 없이 만나 상처를 치유할 충분한 시간을 줘야 한다는 것이다.

수십 년이 지난 옛날이야기를 다시 꺼내 뭐하냐는 이들도 있다. 그들에게 헤어진 지 39년 만에 2007년 이산가족 상봉행사에서 아들을 만난 뒤 2년이 채 안 된 겨울, 북한의 아들을 사무치게 그리워하다 세상을 떠난 88세 할머니 얘기를 들려주고 싶다. 이동덕 할머니의 아들 김홍균씨는 1968년 고기를 잡으러 바다에 나갔다 납북됐다. 할머니는 상봉행사가 끝난 뒤 고향에 돌아와 39년 전 아들과 헤어질 때 꾸었다는 꿈 얘기를 작은 아들에게 자꾸 했다.

“솔밭에 홍균이가 억울한 표정으로 고개를 푹 숙이고 있었는데 종아리에 박힌 못을 쑥 빼줬더니 너무나 기뻐하더라”는…. “꿈에서 같이 손잡고 행복했는데, 상봉행사 때 금강산 삼일포로 홍균이랑 나들이를 가는 길에 똑같은 솔밭이 있었다”는…. 할머니는 “수십 년 전 꿈을 생시로 겪었다”고 했다. 분단이 남긴 한이 할머니의 꿈으로, 현실로 오가며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 할머니를 괴롭혔을 것이다. 이들에게 이산을 수십 년 전 과거라고 할 수 있는가. 너무나 아픈 현재다.

서울대교구가 진행 중인 ‘내 마음의 북녘본당 갖기’ 운동을 천주교의 이산가족 문제 해결 운동으로 이어갔으면 좋겠다. 이 기도운동은 북한 지역의 57개 본당 가운데 하나 이상의 본당을 정해 매일 북녘본당과 공동체를 위해 기도하는 것이다. 우선 이산가족인 신자들이 자신의 고향에 따라 기도할 본당을 정하고, 나아가 신자가 아닌 이산가족들의 고향에 있던 본당을 위해서도 천주교 신자들이 기도하면 어떨까.

윤완준 (테오도로) 동아일보 베이징 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