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마당

[밀알 하나] "맨 나중에 온 이 사람에게도 품삯을 주고 싶소!”(마태 20,14) / 노성호 신부

노성호 신부 (용인대리구 양평본당 주임)
입력일 2017-08-29 수정일 2017-08-29 발행일 2017-09-03 제 3060호 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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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도밭 주인이신 저희 아버지는 일 년이면 수차례씩 ‘인력사무소’를 방문하십니다. 시골에서 일손을 구하기란 진정 녹록치 않은 세상이 되었는데요, 다행히 그런 곳이라도 있어서 얼마나 감사한 지 모릅니다. 갈수록 기력이 떨어지시는 아버지를 거들어 드릴 누군가가 절실히 필요할 때가 많기 때문입니다.

가끔 아버지를 뵈러 갈 때면 그곳 풍경을 이야기해 주실 때가 있습니다. 아침 일찍 가야만 좋은 일꾼을 구할 수 있다는 것부터 시작해서 주로 어느 나라에서 온 사람들이 많은지, 하루 일당은 얼마고, 몇 시부터 몇 시까지 일을 시킬 수 있고, 새참은 잘 챙겨줘야 한다는 등의 이야기를 듣고 있노라면 시간이 절로 간답니다.

그런데 아버지 말씀을 듣고 있으면 안타까울 때가 많습니다. 왜냐하면 일꾼으로 뽑히는 사람들의 처지가 하늘과 땅 차이인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우즈베키스탄이나 카자흐스탄에서 온 건장한 청년들은 덩치가 좋고 힘이 세 보일 뿐더러 일도 잘 해서 금방 일선에 뽑힌답니다.(저도 한 번은 저희 포도밭에서 일하고 있는 우즈베키스탄 청년을 본 적이 있었는데, 정말 등짝이 무슨! 그 등짝에서 고스톱을 쳐도 모자람이 없을 정도로 드넓은 등짝을 지녔더군요.)

하지만 왜소하고 깡말라 기운이 없어 보이는 사람들은 그 누구도 거들떠 봐주지 않기 때문에 허구한 날 인력사무소만 드나들 뿐 별다른 소득없이 허송세월 한다는 것입니다. 물론 어쩌다 어렵사리 가뭄에 콩 나듯 주인의 눈에 들어 일꾼으로 뽑히기도 하지만, 지불해야 할 알선수수료가 있기 때문에 그들의 실질적인 수입은 땀 흘려 일한 것에 비해 그리 많지 않다고 합니다.

세상 모든 일터의 주인들이 예수님의 비유 속에 등장하는 “포도밭 주인”(마태 20,8)처럼 일을 시작한 시간에 상관없이 같은 품삯을 치러줄 수는 없겠지만, 일꾼들이 뭐라도 일을 해볼 수 있도록 기회만이라도 허락한다면, 일꾼들은 정말 행복해 할 것 같습니다.

매일 매 순간 부족하고 나약한 모습을 드러내며 수많은 잘못을 저지르는 우리지만, 그때마다 무서운 인내심으로 또 다시 기회를 주시는 하느님처럼 말이죠. 하느님께서 우리를 용서하시고 매번 새로운 기회를 주실 때면 우리는 정말 행복해지지 않나요? 그리고 그 누구라도 소외되거나 외면받지 않도록 “맨 나중에 온 이들부터”(마태 20,8) 챙겨주고 배려하는 모습이 있다면 좋겠다 싶어요.

세상의 정의와 논리대로라면 신앙생활 안에도 서열이나 등급이 있어야 합당한 것이겠지요. 모태신앙을 간직하고 유아세례를 받은 저 같은 신자들은 더 많은 상을 받아야 하고, 엊그제 대세를 받고 돌아가신 어떤 교우는 소위 말하는 ‘막차’를 타셨으니 받을 상이 거의 없어야 맞는 것이겠지요.

하지만 하느님의 사랑과 자비는 이러한 세상의 산법(算法)을 완전히 부숴버리지 않았습니까? 하느님께서는 ‘가나안 부인’(마태 15,22)과 같이 의지할 곳이 당신뿐인 사람들을, 예수님의 “옷에 손을 대기만 하여도 구원을 받겠지”(마르 5,28)하며 강한 믿음을 표현하는 이들을, 감히 “하늘을 향하여 눈을 들 엄두도 내지 못하고 가슴을 치며”(루카 18,13) 참회의 기도를 바치는 우리 죄인들을 더 먼저 챙겨주시고 우선시 하시니 말입니다.

하느님께서는 맨 나중에 온 이들에게도 아낌없이 품삯을 주시는 분입니다. 그분의 사랑과 자비가 얼마나 큰지요. 우리 교우님들! 참 좋으시겠습니다. 그 크신 사랑과 자비를 온전히 받고 계시니 말입니다. 포도밭 주인이신 하느님 아버지께 깊은 감사와 찬미를 드립니다.

노성호 신부 (용인대리구 양평본당 주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