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주의 창

[방주의 창] 아론과 황금 송아지, 새로운 길 / 양기석 신부

양기석 신부 (수원교구 송전본당 주임 ·수원교구 환경위원회 위원장)
입력일 2017-08-29 수정일 2017-08-29 발행일 2017-09-03 제 3060호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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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집트를 탈출한 이스라엘인들은 모세가 십계명을 받으러 시나이산에 올라 40일을 지내는 동안 두려움에 휩싸입니다. 그래서 아론에게 몰려가 신을 만들어 달라고 떼를 씁니다.

“일어나 앞장서서 우리를 이끄실 신을 만들어 주십시오. 우리를 이집트에서 데리고 올라온 저 모세라는 사람은 어떻게 되었는지 모르겠습니다.”(탈출 32,1)

아론은 백성들의 귀에 걸린 금 고리들을 달라고 요구해 그 금 고리들을 녹여 ‘수송아지 상’을 만들자 사람들은 “이스라엘아, 이분이 너를 이집트 땅에서 데리고 올라오신 너의 신이시다”(탈출 32,4) 하고 외쳤습니다.

고역에 짓눌려 탄식하며 하느님께 도움을 청했던 이들이(탈출 2,23) 해방자이신 하느님을 배신하는 장면입니다. 그들은 왜, 하느님을 배신하고 우상숭배에 빠졌겠습니까?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여기에서는 ‘두려움’에서 그 원인을 찾고 싶습니다. 이집트를 탈출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광야는 새로운 세상을 향해 가는 여정이요, 과정이었습니다.

새로운 세상에서는 당연히 새로운 삶의 태도가 요청됩니다. 절대 권력자 파라오의 명령이 아니라 하느님의 법을 받아들이고, 지키고 살아야 했습니다. 하지만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느님의 율법의 보호 아래에서 사는 삶이 아니라 폭력으로 굴종을 강요하는 권력자 파라오 치하의 삶이 더 익숙한 이들이었습니다. 그 압제 아래 핍박받는 삶이 너무 싫었지만, 그 외의 삶은 알지 못하던 이들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새로운 세상으로 향한 여정 속에서 자꾸 되돌아가려 합니다. 사탄은 인간의 두려움을 교묘하게 자극합니다. 하느님은 살려거든 생명을 선택하라(신명 30,19) 하시는데, 선악과를 선택하면 죽는다(창세 2) 하시는데, 사탄은 인간의 두려움을 부추겨 과거의 잘못된 선택을 반복하게 만듭니다.

문재인 정부가 지난 대선에 제안한 공약 중 가장 많은 호응을 얻었던 공약이 바로 탈핵(탈원전) 공약이었습니다. 신고리 5,6호기 건설은 백지화하고, 신고리 4호기와 신울진 1,2호기 건설은 공론화를 통해 그 백지화 여부를 결정하겠다 했습니다.

그러나 현재 정부는 신고리 4호기, 신울진 1,2호기의 건설은 기정사실화하고, 신고리 5,6호기의 ‘백지화’가 아닌 ‘공론화’로 그 범위를 현격하게 좁혔습니다. 삼척과 영덕의 신규 핵발전소 건설을 백지화한다 할지라도, 신고리 5,6호기 건설을 공론화 과정을 거쳐 백지화한다 할지라도 실제로 핵발전소는 현재 24기에서 27기로 늘어납니다.

신규 핵발전소들의 발전량이 1.4기가와트임을 감안해 볼 때 폐쇄한 고리 1호기(0.587기가와트) 기준으로 7기의 핵발전소가 추가 건설되는 형국입니다. 적폐청산을 요구하는 촛불로 이루어진 정부임에도 불구하고, 우리 민족과 국가에 가장 큰 굴레가 될 핵과의 결별을 못하고 있는 모양새입니다.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이 없다 하지 않습니까. 우리 사회의 정치권과 정부 당국자들은 지금 마치 자유를 찾아 길을 나섰지만 과거 노예살이 때 경험했던 고깃덩어리가 들어간 솥단지를 떠올리며 우상숭배에 빠졌던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이것이 너의 하느님이라며 ‘황금소’를 만들어낸 아론과 같은 처지처럼 보입니다.

탈핵은 대전환을 의미합니다. 소비를 최우선으로 하고, 생명을 경시하던 죽음의 사회로부터, 생명을 최우선으로 하며, 공존을 가장 큰 가치로 여기는 생명 중심의 사회로의 전환을 의미합니다. 이것이 하느님 나라를 완성하는 과정일 겁니다. 신규 핵발전소의 60년 수명과 2079년 탈핵을 이야기하는 것은 ‘나’는 책임지지 않겠다는 자세입니다. 동시에 이는 탈핵이 아닙니다. 현 정부와 우리 사회구성원들이 새로운 길 앞에서 두려워하는 이들에게 우상숭배를 부추겼던 아론과 같은 실수를 하지 않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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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기석 신부 (수원교구 송전본당 주임 ·수원교구 환경위원회 위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