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성

[세상살이 신앙살이] (399) 사제의 유머는 치유의 힘 (상)

강석진 신부(한국순교복자성직수도회)
입력일 2017-08-22 수정일 2017-08-22 발행일 2017-08-27 제 3059호 1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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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님 댁으로 휴가를 갔을 때의 일입니다. 휴가 중 부모님 동네에서 친동생처럼 아끼는 부부로부터 전화가 왔습니다. 꼭 소개시켜줄 분이 있다면서, 그 집에서 나올 땐 ‘가정을 위한 기도’도 바쳐달라는 요청을 했습니다.

처음 만나는 사람에게 낯가림이 있는 나로서는, 짧은 휴가 중에 모르는 분을 만나야 한다는 게 여간 불편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러나 워낙 아끼는 부부의 간청이라 마음속으로는 ‘꼭 만나야 할 무슨 이유가 분명 있겠지!’ 하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그날 오전엔 집 앞에 있는 해안 길을 걸으며, 그 만남을 성모님께 봉헌하는 마음으로 묵주기도 20단을 바쳤습니다. 그런 다음 약속 장소로 나갔고, 동생 부부는 나를 데리고 근처에 있는 어떤 집으로 들어갔습니다. 그곳은 마당이랑 실내가 아담하면서도 고풍스러워, 마치 운치 있는 카페에 들어온 듯했습니다. 그리고 과격하게 반기는(?) 반려동물들의 인사를 받은 다음, 나이가 나와 비슷하고 수줍음이 많은 듯한 그 집 주인인 자매님을 만났습니다. 남편분은 직장에 나갔고, 자매님 혼자 집에 계셨습니다. 그런데 알고 보니, 그 집은 그 자매님이 몇 년 동안 여기저기서 건축 소재를 모아서 지은 집이었습니다.

우리는 거실에서 차를 마시면서 대화를 했습니다. 나는 동생 부부와 그 자매님에게 최근에 경험했던 여러 가지 사건(?)과 사고(?)들을 재밌게 유머를 섞어가며 이야기했습니다. 예를 들어, 엄청나게 부풀어 오른 내 몸에 붙은 살을 빼려고 새벽마다 안하던 운동을 하다가 넘어져 발가락을 심하게 다친 이야기, 꽤나 높은 오름이었는데 가볍게 생각하고 오르다가 심장이 터져 죽을 뻔한 이야기, 과도하게 긴 곶자왈을 걷다가 흘린 땀으로 옷이 흠뻑 젖고 결국 여름 감기에 걸려 골골골 했던 이야기, 그 밖에도 늘 그렇듯 어리바리한 내 삶의 이야기들을 ‘이야기보따리’를 풀어 엮어나갔습니다.

그러면서 나는 속으로 ‘야, 말 주변이 없는 내가 이렇게 말을 잘 했었나! 정말로 오늘 아침 묵주 기도의 효과를 톡톡히 보네!’ 하면서, 즐겁게 이야기를 했습니다. 특히 친동생처럼 아끼는 부부와 나는 그 자매님 앞에서 ‘고춘자와 장소팔의 만담’처럼 몸 개그도 했습니다. 그러자 그 자매님은 계속 웃기만 했고, ‘너무 웃어서 얼굴 근육이 다 아프다’며 행복한 고민도 했습니다. 대화를 마친 후, 일어나 밖으로 나올 때 나는 그 자매님에게 말했습니다.

“자매님, 제가 원래 이런 사람이 아닌데. 오늘따라 허파에 바람이 들었는지 말이 많았네요.”

그러자 그 자매님을 처음 뵈었을 때 보다 더 환한 웃음을 지으며,

“신부님, 제가 몇 달 만에 이렇게 많이 웃어보기는 처음입니다. 저에게는 웃음이 기도였어요. 웃음을 통해서 좋은 기도를 해 주신 것 같아서 진심으로 행복했습니다.”

왠지, 그 자매님의 모습 속에서 많이 아프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아주 많이 말입니다.

(다음 호에 계속)

강석진 신부(한국순교복자성직수도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