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마당

[민족·화해·일치] 희생을 감수하고 전쟁하자는 이들에게 / 윤완준

윤완준 (테오도로) 동아일보 베이징 특파원
입력일 2017-08-22 수정일 2017-08-22 발행일 2017-08-27 제 3059호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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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말 아들이 있는 중국에 왔다 귀국하는 부모님을 배웅하며 마음이 편치 않았다. 우리 세대에 ‘전쟁’이라는 말이 이토록 우리 곁에 가까이 다가온 적이 있었을까. 일부의 희생을 감수하고서라도 골칫거리 북한을 무너뜨리면 좋은 일 아니겠느냐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전쟁으로 우리가 입을 희생이 얼마나 클지 상상조차 어렵다는 점은 외면한다.

더 감당하기 어려운 건 돌이킬 수 없는 희생 이후에 일어날 일들이다. 전쟁으로 내 가족이 희생됐다면 통일이 됐더라도 전쟁 때 적이었던 북한을 용서하기 어렵다. 북한 주민 역시 전쟁으로 가족이 희생됐다면 한국을, 미국을 미워할 것이다. 남북 주민이 서로 희생의 책임이 누구에게 있는지 묻고 갈등할 것이다. 가장 큰 재앙은 희생으로 생겨난 증오다. 전쟁으로 얻은 통일은 행복하지 않다.

한반도에 전쟁이라는 말이 이토록 자주 회자되는 오늘, 오래지 않은 과거에 분단으로 가족을 잃은 이들의 얘기에 귀 기울여봤으면 한다. 필자는 2015년 2월 분단 70년을 맞아 ‘통일은 치유다’라는 기획 시리즈를 독자들에게 소개했다. 진정한 통일은 분단으로 입은 상처를 치유하는 것이라 생각해 취재를 시작했다.

1회를 위해 2010년 천안함 사건으로 아들을 잃은 아버지들을 만났다. 2회를 위해서는 2008년 금강산 피격 사건으로 어머니를 잃은 젊은이를 만났다. 필자는 이전의 천안함 유족 인터뷰와 다른 얘기를 듣고 싶었다. 자칫 유족들을 힘들게 하는 것은 아닐까 걱정했지만 반응은 놀랍고도 마음 깊은 곳에서 존경심이 우러나오게 했다. 아들을 죽는 날까지 잊을 수 없다는 이인옥씨는 “이젠 아픔만 얘기할 게 아닌 것 같다”며 조심스럽게 속내를 털어놓았다. “남북 대치가 평화적으로 풀려 국민생활이 안정되는 국익이 먼저”라고 했다. “그러려면 남북관계가 좋아져야 하고 정부는 평화적 문제 해결 노력을 해야 하며 북한도 마음을 열고 진솔하게 대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전쟁을 해서라도 북한을 무너뜨려 통일해야 한다’는 주장에 일침을 놓았다. “평화적으로 경제적으로 문화적으로 통일해야지, 전쟁을 생각하는 건 어처구니없는 일”이라고 했다.

금강산 피격 사건으로 세상을 떠난 고 박왕자씨의 아들 방재정씨는 인터뷰 당시 서른 살이었다. 밝은 웃음으로 금강산 관광을 떠나던 어머니를 잊지 못하면서도 “남북이 100년, 200년이 지나도 총구를 겨눈다면 얼마나 소모적이고 비효율적일지” 고민하고 있었다. 그들은 이미 분단이 자신에게 준 아픔을 한 단계 높은 차원으로 승화시켜 한반도 평화를 걱정하고 있었다. 그런 이들에 비하면 희생을 감수하고 전쟁하자는 이들은 얼마나 무책임한가. 프란치스코 교황은 2014년 한국을 찾아 “평화는 불신과 증오의 장벽을 허물어 가는 끝없는 도전”이라고 말했다. “평화는 상대방의 말을 참을성 있게 들어주는 대화를 통해 이뤄질 수 있다”는 교황의 말을 되새길 때다.

윤완준 (테오도로) 동아일보 베이징 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