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마당

[밀알 하나] 동병상련(同病相憐)

노성호 신부 (용인대리구 양평본당 주임)
입력일 2017-08-22 수정일 2017-08-22 발행일 2017-08-27 제 3059호 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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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그랬겠지만 저도 예전에 성적이 마구 떨어질 때라든지 공부를 엄청나게 해도 결과가 신통치 않을 때면 세상 끝날 것 같은 한숨을 내쉬며 낙담을 하곤 했답니다.

정말이지 누군가 제게 ‘절망의 나락이란 무엇이오?’라고 묻는다면, ‘내 꼬락서니를 보면 단박에 알 수 있지 않겠소?’라고 대답할 수 있을 정도로 처참하고 비관적인 느낌에 사로잡히는 날이 있었습니다.

그런 느낌이 드는 날이면 제 자신이 얼마나 딱하고 가엾게 여겨졌는지 모릅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그때마다 남모르게 위로를 받으며, 다시 심기일전해야겠다고 다짐하게 되는 일들이 찾아오곤 했습니다. 저보다 성적이 현저히 많이 떨어진 친구들을 볼 때는 특히 그랬고, 성적에 연연해하지 않고 자신의 꿈을 키워가는 친구들을 만날 때는 스스로를 부끄럽게 여기며 기운을 내곤 했습니다. 심지어 몸이 성치 않은 친구들이 저를 위로하며 기운을 북돋워주기도 했는데, 지금도 그날의 친구들을 생각하면 열심히 살아가야겠다는 결심을 새롭게 합니다.

분명 그때의 저는 동병상련(同病相憐)이었지요. 저보다 못한 친구들을 바라보며, 딱한 저보다 더 딱한 친구들에게서 위로와 힘을 받았으니까요.

하지만 정말 중요한 것은 무엇인지 아세요? 그것은 저만 일방적으로 친구들에게서 위로와 힘을 받았던 것이 아니었다는 사실입니다. 그때의 제 친구들도 저를 보면서 위로와 힘을 얻었다는 것이 중요합니다.

지금 생각해봐도 좀 우습고 하지만 약간은 약이 오르는 말이긴 한데, 그때 제 친구들은 이런 말을 했었습니다.

“너는 신부가 돼서 평생 혼자 살아갈 건데 뭐.”, “너는 장가도 안 가고 혼자 외롭게 살아가겠다고 이 고생을 하는 거잖니?”, “신부가 돼보겠다고 이렇게 애쓰는 너도 있는데 뭘.”

이것들이 사람 하나를 가운데 놓고 찐하게 위로를 하는 건지, 아니면 고소하게 놀리는 건지, 듣는 사람 참 아리송하게 만들면서 지들은 스스로 애써 괜찮다며 너스레를 떨더란 말입니다. 진정 동병상련이란 말은 “같은 병자끼리 가엾게 여긴다는 뜻으로, 어려운 처지에 있는 사람끼리 서로를 불쌍히 여겨 동정하고 도와 줌”이란 뜻을 지닌 말이 맞았습니다.

우리 모두는 하나같이 가련하고 불쌍한 존재들이 아닌가 싶어요. 서로간의 상대적인 차이는 있겠지만, 부자든 가난한 자든, 건강한 이든 병약한 이든, 지금 웃는 자든 우는 자든, 누구나 동정 받고 싶고 위로를 갈망하잖아요. 그래서 우리는 오늘도 예수님께 의탁하며 많은 기도를 드렸던 것이 아닌가요? 주님께서 나를 위로해 주시길, 가련한 나를 당신의 크신 자비와 사랑으로 어루만져 주시길 청하면서 말이지요.

사실 십자가에 매달리신 예수님을 바라보면 동병상련을 느낍니다. 지금 나의 처지가 그분보다 더 참혹하고 끔찍할 수는 없을 테니까요. 허나 예수님께서도 우리를 바라보시며 동병상련을 느끼시지 않을까 싶어요. 힘겨운 하루하루를, 고단한 매일 매일의 일상을 열심히 살아내려 몸부림치는 당신의 아들딸들을 바라보시면서 주님께서도 분명 힘과 용기를 내실 것 같아요.

‘나는 누군가로부터 위로만 받는다?’ 아닙니다.

‘나도 누군가의 위로가 되고 있다?’ 맞습니다. 주님의 위로가 되어주시는 여러분들이 계셔서 참으로 다행입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이 참으로 자랑스럽고 존경스럽습니다.

노성호 신부 (용인대리구 양평본당 주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