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교구순교자를 만나다] 복자 이중배(마르티노)

이승훈 기자
입력일 2017-08-22 수정일 2017-08-23 발행일 2017-08-27 제 3059호 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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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중에서 아픈 이들 치료하며 입교 권면
여주지역 양반 출신… 입교 후 제사 거부
사촌 원경도 등과 함께 부활대축일에 체포

복자 이중배(마르티노) 초상화.

이중배(마르티노) 복자는 부모와의 정(情)보다도 아버지 하느님에 대한 효를 굳게 실천하고, 박해를 당하면서도 주위의 아픈 이들을 돌본 순교자다.

복자는 여주의 양반 출신으로, 1797년 사촌인 원경도(요한)와 평소 가깝게 지내던 김건순(요사팟)을 통해 천주교를 알게 되고 곧바로 신앙을 받아들였다.

복자는 용기와 힘이 뛰어나고 기개가 있었지만, 한편으로는 난폭하고 성을 잘 내는 성격도 갖고 있었다. 하지만 천주교에 입교한 뒤로 그의 성격이 완전히 변하기 시작했다. 복자는 정직하고 굳센 성품을 유지하면서 자신의 난폭함도 억눌렀다.

신앙생활에도 열심해 가족들을 모두 입교시켰을 뿐 아니라, 교리를 받아들인 후부터는 교회 가르침에 따라 제사를 지내지 않았다. 무엇보다도 천주교를 박해하는 시기였음에도 개의치 않고 신앙을 고백하곤 했다. 또 사순시기는 지극한 절제로 보내고 예수부활대축일에는 크게 기뻐하며 지냈다.

복자가 체포된 것도 예수부활대축일을 지내면서였다. 복자는 1800년 예수부활대축일 사촌인 원경도와 여주 양섬에 사는 신자의 집에 가서 함께 기도하고 성가를 부르며 부활의 기쁨을 나눴다. 이때 포졸들이 들이닥쳐 복자와 그와 함께 있던 신자들을 잡아간 것이다.

복자는 6개월이나 이어진 옥중생활 속에서도 포기하거나 좌절하지 않았고, 오히려 신자로서 신앙활동에 매진했다. 복자의 신앙은 배교 강요와 문초, 모진 형벌 속에서도 결코 흔들리지 않았다. 오히려 함께 잡힌 신자들에게 용기를 보여주고 격려해 신앙심이 흔들리지 않도록 힘을 주곤 했다.

특히 복자는 옥중에서 평소 익힌 의술을 펼쳐 아픈 이들을 고쳐줬다. 함께 갇힌 신자들의 상처와 병이 그의 치료로 나았고, 포졸들도 병든 가족을 데려와 치료를 받았다. 한 번은 포졸들이 복자에게 의학서적을 보여달라고 청하자 “나는 독특한 처방이 없고, 다만 천주를 섬기기만 할 뿐”이라면서 “의술을 배우고 싶다면 우선 나처럼 천주를 믿어야 한다”고 말하며 여러 사람을 입교시키기도 했다.

옥중 생활 중 복자에게 어려움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복자의 부친이 초라한 모습으로 찾아와 “백발이 성성한 아비를 버리고 죽고자 하느냐”며 눈물을 흘리며 호소한 사례도 있었다. 복자는 효심으로 찢어지는 마음을 추스르면서, “아버지도 저와 마찬가지로 교우이시니 우리는 사물을 더 높은 시야에서 보아야 한다”면서 “인정에 끌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를 배반할 수는 없을 것”이라고 부친을 설득했다.

복자는 서울로 압송됐다가 다시 여주로 끌려가 1801년 4월 25일 참수 순교했다.

■ 발자취 만날 수 있는 곳 - 여주·어농성지

여주 양섬에 있는 순교자 기념비. 가톨릭신문 자료사진

용인대리구 여주성당(경기도 여주시 우암로 5)은 복자가 예수부활대축일을 지내다 잡힌 여주 양섬과 복자의 순교터로 추정되는 비각거리에 현양비를 세우고, 복자와 여주 지역 순교자들을 현양하고 있다.

어농성지(경기도 이천시 모가면 어농로 62번길 148)에서도 신유박해의 순교자인 복자를 현양하고 있다.

이승훈 기자 joseph@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