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기획/특집

[헬기조종사의 병영일기] 조종사의 여름나기

이연세(요셉) 대령. 육군 항공작전사령부
입력일 2017-08-14 수정일 2017-08-14 발행일 2017-08-20 제 3058호 1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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섭씨 55도! 한낮 뙤약볕 아래의 활주로 표면 온도입니다. 멀리 곧게 뻗은 활주로를 바라보면 마치 모든 것이 불타고 있다는 착각에 빠지곤 합니다. 여름 한낮의 이글거림은 꼭 알코올이 타는 것처럼 보입니다. 단 몇 분만 서있어도 온몸에서 땀이 비 오듯 줄줄 쏟아집니다.

대부분의 군용 헬기에는 무게를 줄이기 위해 에어컨을 장착하지 않습니다. 폭염에 에어컨이 없다고 비행임무를 멈출 수는 없습니다. 특히 조종사가 입는 조종복은 불연성의 특수소재로 두껍고 긴소매의 원피스형입니다. 만약의 사고에 대비하고 안전을 위해 특별하게 만들어진 것이죠. 게다가 비행을 할 때는 비행헬멧을 쓰고, 조종간이 미끄러지지 않도록 손목까지 올라가는 두툼하고 긴 조종장갑까지 착용해야만 합니다.

조종사들에게 여름은 사계절 중 가장 견디기 어려운 시기입니다. 그래서 폭염을 이기기 위해 자신만의 노하우를 총 동원합니다. 어떤 이는 얼음조끼를 착용하기도 하고 또 다른 이는 얼음 방석을 준비하기도 하며, 목에 아이스 스카프를 걸치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 모든 노력에도 한 시간 이상을 버티기가 어렵습니다.

부대에서도 조종사들의 편의를 위해 여러 가지 대책을 세웁니다. 자체의 비행훈련은 아침 일찍 시작해서 뜨거워지기 전에 끝내거나, 아예 폭염이 한풀 꺾인 오후 늦게 실시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대외적인 임무는 어떤 상황에서라도 수행해야만 합니다.

오랜 세월 이 방법 저 방법을 시도해 본 베테랑 조종사들은 ‘어떻게 여름을 보내야 하는가’를 경험으로 잘 알고 있습니다. 그들의 여름나기 노하우는 그냥 견뎌내는 것입니다. 평소 꾸준히 더위를 이겨낼 수 있는 체력을 키우고 컨디션 조절을 위해 자기관리에 좀 더 관심을 기울입니다.

펄펄 끓는 날씨에 비행 가방을 메고 쨍쨍 내리쬐는 활주로를 향해 묵묵히 걸어가는 조종사들의 뒷모습을 봅니다. 그들의 어깨에서 당당한 자긍심이 묻어나옵니다. 땀으로 하얀 지도가 그려진 조종복을 입은 채, 임무 종료 신고를 할 때는 어떤 경이로움을 느끼게 됩니다.

지난 주일 미사에서 강원도 탄광마을의 도계본당 신부님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특별 강론에서 사양 산업으로 점점 빛을 잃어가는 탄광지역 도계의 실상과 가난 속에서 외롭고 힘겹게 살아가는 어르신들의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 “탄광에서라도 일할 수 있는 것은 행복합니다. 늙고 몸이 불편해서 더 이상 일할 수 없다는 것이 안타깝습니다. 한창 더운 날씨지만 땅 위에서 일한다는 것은 지하 1000미터 아래 갱도에서 일하는 탄광노동자들에 비하면 얼마나 행복한 일인지 모릅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열대야가 밤잠을 설치게 하는 밤! 수천 미터의 탄광 막장에서 눈동자만 반짝이며 일하는 노동자들! 임무수행을 위해 비행 가방을 둘러메고 한낮의 열기 속으로 걸어가는 조종사들! 그들의 땀방울이 참으로 아름답고 소중하게 다가옵니다. 하느님 보시기에 좋은 모습으로….

이연세(요셉) 대령. 육군 항공작전사령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