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성

[세상살이 신앙살이] (398) 에어컨 사랑

강석진 신부(한국순교복자성직수도회)rn
입력일 2017-08-14 수정일 2017-08-14 발행일 2017-08-20 제 3058호 1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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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 30년 차 부부와 식사 후 차를 마시던 중이었습니다. 대뜸 형제님이 묻기를,

“요즘처럼 더운 때에 신부님들은 어떻게 지내세요? 사제관에 에어컨은 잘 돌아가나요?”

나는 그 부부에게 교구 사제와 수도자들의 서로 다른 생활 방식에 대해 간단히 설명을 드린 후, 수도원 각 방에 에어컨은 없지만, 그래도 선풍기는 한 대씩 갖고 있다는 말과 함께 다음의 이야기를 해 주었습니다.

“그런데 수도원에 유일하게 에어컨이 있는 곳이 있어요. 그곳은 성당입니다. 우리 수도회는 일 년 내내 두꺼운 수도복을 입고 성당에서 기도하고, 미사를 봉헌합니다. 그런데 청빈한 삶도 중요하지만, 때로는 흘러내리는 땀 때문에 기도가 분심이 들어요. 그래서 공동체에서는 몇 년 전에 성당에 에어컨을 설치했답니다. 그런데 무슨 일이 있는지 아세요?”

그 부부는 호기심을 가진 눈으로, 모른다는 듯이 고개를 가로저었습니다. 그래서 나는,

“여름이 되면, 수사님들이 에어컨이 있는 성당에 기도하러 일찍들 와요. 그래서 에어컨이 우리들의 삶을 성화시켜 주는 도구가 되곤 합니다. 하하하.”

내 말을 듣자마자, 형제님도 웃으면서 말을 이었습니다.

“저희 부부가 요즘 그래요. 신부님, 우리 부부는 결혼한 지 30년 됐잖아요. 그런데 언제부턴가 우리 부부가 안방에서 같이 안 자더라고요. 음, 내가 안방에서 자면 아내는 지방에서 근무하다가 일주일에 한 번씩 집에 오는 딸 아이 방에서 자요. 아내가 안방에서 자면 나는 자연히 마루의 소파에서 자고! 그런데 신부님, 기억나세요, 몇 년 전에 엄청 더웠던 거. 그때 안방과 거실에 에어컨을 설치했어요. 하지만 그 당시에 아내는 춥다고 에어컨을 켜지 않았고, 주로 제가 에어컨을 사용했어요. 제가 자는 곳을 중심으로 에어컨을 켰기에, 우리 부부는 뭐 그렇게 불편하지는 않았어요. 그런데 올해는 더워도, 너무 덥잖아요. 올핸 안방 에어컨을 켜고 자곤 했는데, 어느 날 아내가 더워서 못 자겠다고 베개를 가지고 안방으로 들어오는 거예요. 그래서 헤헤, 요즘 우리 두 사람은 오랜만에 한 침대에서 자요, 신혼부부처럼. 또 같은 침대에서 자다 보니, 에어컨 때문에 약간 추우면 아내를 안고 자고, 더우면 아내랑 떨어져 자고 그래요. 그러다 보니 요즘 잘 때면 아내 얼굴을 보고 자고, 일어날 때도 아내 얼굴을 보고 일어나고. 그런데 그 기분이 묘하게 좋더라고요. 그래서 우리 부부는 에어컨에게 감사해요. 우리 부부를 다시금 신혼부부처럼 함께 잠 잘 수 있도록 도와주어서….”

올해, 정말이지 덥기는 더운 모양입니다. 그리고 선풍기든 에어컨이든 더울 때면 시원한 것 시원한 장소를 찾는 것은, 사람이면 누구나 같은 마음인 듯합니다. 또한 에어컨이든 뭐든 간에, 사람과 하느님을 이어주고,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는 것이라면 그것들을 적절하게 잘 이용하는 것은 지혜로운 삶, 결국은 그것이 사랑의 삶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리고 나는 지금 이 글을 쓰면서도, 가끔은 시원한 바람이 간절히 그립습니다. 그래서 요즘은 내가 거룩해(?)졌는지, 에어컨이 있는 성당에 빨리 가고 싶은 마음이 듭니다.

강석진 신부(한국순교복자성직수도회)r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