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우리교구 이곳저곳] (24) 정자동주교좌성당

이승훈 기자
입력일 2017-08-14 수정일 2020-11-09 발행일 2017-08-20 제 3058호 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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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 가르침 담은 성미술 작품 곳곳에

정자동주교좌성당.

우리 교구 내 수많은 장소 중 교구를 가장 대표하는 곳은 어딜까. 교구의 중심, 바로 주교좌성당이다. 교회의 수위권자인 교황이 임명한 주교를 중심으로 이룬 교회공동체를 교구라고 말한다.(교회법 제389조) 8월 20일 교구 주교좌성당의 봉헌 축일을 맞아, 정자동주교좌성당을 찾았다.

경기도 수원시 장안구 이목로 39. 은은한 연회색의 화강암으로 둘러싸인 성당이 서있다. 교구 내에 이만큼 ‘웅장하다’라는 말이 어울리는 성당이 있을까. 성당에 점점 가까워질수록 그 위용이 더 커지는 것 같다. 1543㎡의 대지 위에 세워진 이 성당의 높이는 50m가 넘는다. 50m면 아파트 15~20층 정도에 해당하는 높이다.

반듯하게 우뚝 서있는 성당의 모습이 마치 튼튼한 성처럼 느껴졌다. 무엇을 지키려고 이토록 높고 굳건한 벽을 만들었을까? 성당 위에 세워진 4개의 종탑에 담긴 의미를 생각하니 고개가 끄덕여졌다. 종탑은 예수의 생애와 말씀을 기록한 마태오, 마르코, 루카, 요한 복음서를 상징한다. 주택들과 가까운 곳에 자리해 비록 종소리를 울릴 수는 없지만, 복음의 말씀을 지키고 널리 퍼뜨리고자 하는 교구의 마음을 담고 있다.

성당 입구에 다다르자 정문 위에 주교 문장이 보였다. 바로 교구장 이용훈 주교의 문장이다. 문장에는 교구를 상징하는 의미가 가득하다. 교회를 수호하는 주교의 직무를 나타내는 방패 모양 형상 안에 담긴 청색은 교구 주보인 평화의 모후를 상징한다. 순교자를 상징하는 칼, 종려나무, 목칼을 그려 교구가 순교자의 피와, 그 영광 위에 세워진 교회임을 나타낸다. 방패의 중앙을 가로지르는 선은 수원 화성의 성곽을 형상화한 것이다.

64개. 호기심을 참지 못하고 계단 수를 헤아렸다. 3층에 자리한 대성당에 가기 위해 올라야하는 계단이다. 1~2층에도 성당이 있기 때문에 일반적인 3층 보다 더 높이 올라가야한다. 미사를 봉헌할 때마다 이 많은 계단을 오르내리려면 힘들지 않을까하는 생각을 했지만, 대성당 입구에 도착하는 순간 그런 생각을 한 자신을 반성했다.

대성당 입구에는 하느님을 믿는 마음을 굽히지 않고 늘 하느님만을 바랐던 순교자들의 수난이 상세히 묘사돼 있다. 목칼을 쓴 옥중의 신자들부터 다양한 방법으로 형벌을 받는 신자들, 형장에 끌려가는 신자들에 이르기까지. 그리고 문의 양쪽에는 순교자들이 성심을 가리키는 예수와 마리아와 함께하고 있다. 하느님을 만나러 가는 길은 편하고 좋기만 한 길이 아니라는 것을 순교자들의 삶과 죽음을 통해 알 수 있다.

주교좌성당은 예로부터 ‘문맹자의 성경’이라고 불리곤 했다. 성미술을 통해 예술적 가치를 높일 뿐 아니라, 교회의 가르침을 직간접적으로 전했기 때문이다. 문에 새겨진 모습뿐 아니라 성당 곳곳의 성미술은 교리를 상기시키고, 또 묵상으로 이끈다.

103위 성인 성화가 그려져 있는 대성당 천장 조명.

대성당에 들어가니 가장 먼저 제대가 보인다. 더 정확히 말하면 이 성당 모든 자리에서 제대가 보인다. 기둥을 세우지 않은 덕분이다. 3층과 5층을 합해 1700여 명의 신자들이 동시에 미사를 드릴 수 있는 넓은 공간이지만, 기둥 없는 실내공간을 만들어냈다.

폭이 30m가량 되는 공간을 기둥 없이 지지하는 건축기술은 1993년 성당을 지을 당시에는 최신 공법이었다. 교구의 다양한 행사들이 치러지는 공간인 만큼, 가능한 한 많은 신자들이 제대를 바라보며 미사를 봉헌할 수 있도록 배려한 성과였다. 세계적으로 많은 주교좌성당들이 당대의 가장 발달된 양식으로 건축됐다. 교구의 주교좌 역시 이런 교회 역사의 흐름을 그대로 물려받았음을 알 수 있다.

“하나이고 거룩하고 보편되며 사도로부터 이어오는 교회를 믿나이다.”

제대를 바라보니 니케아-콘스탄티노폴리스 신경의 구절이 떠오른다. 제대 뒷 배경에는 중앙의 십자가를 중심으로 사도들의 모습이 목각부조로 조각돼 있다. 최영철(바오로) 작가가 조각한 사도들의 목각부조 위쪽에는 성령을 상징하는 불꽃과 비둘기 모양이 있고, 그 아래 주교좌가 자리한다.

주교좌는 ‘주교의 의자’를 의미하지만, 교회의 예식에서 주교가 앉는 의자이기에 이 의자는 주교의 권위와 가르침, 혹은 그 직위를 상징한다. 그만큼 중요한 의미를 담기에 성당 이름에도 ‘주교좌’라는 표현이 들어간다. 예수가 임명한 사도들은 예수의 가르침을 따르는 교회 공동체를 이끌었고, 그리고 오늘날 주교들은 사도의 후계자로서 교리를 수호하고 교회 공동체를 이끌고 있다. 제대를 보는 것만으로도 이러한 교회의 가르침을 되새길 수 있다.

사실 건축 당시 성당의 제대는 조광호 신부가 그린 프레스코 벽화로 장식됐다. 부활을 주제로 한 이 제대벽화는 당시 국내 최대 규모의 제대벽화로 유명했다. 2009년 리노베이션 과정을 거치면서 현재는 그 모습을 볼 수는 없지만, 제대벽화는 사도들의 목각부조 뒤편에 고스란히 남아있다.

사도들 모습이 목각부조로 조각돼 있는 대성당 제대.

기도를 바치고 성당을 나서면서 천장을 바라봤다. 천장에는 거대한 돔형 조명이 성당을 밝게 비추고 있었다. 이 조명에는 원형의 끝을 따라 본당의 주보성인이기도 한 103위 성인의 성화가 그려져 있다. 중앙에는 사도들과 예수의 모습이 보인다. 천장을 가득 채운 성화에서 내려오는 빛은 마치 우리를 구원하는 예수님의, 우리를 위해 전구하는 성인들의 마음인 듯 따듯하게 느껴진다.

이승훈 기자 joseph@catimes.kr